우리가 한계라고 믿었던 것이 정말 한계였을까

테슬라 로드스터는 왜 중력에 도전하는가

by광화문덕

자동차는 왜

도로 위를 달려야 할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질문이다.


자동차는 바퀴로 움직이는 기계다. 바퀴가 도로와 맞닿아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며, 멈출 수도 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타이어와 지면 사이에 마찰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자동차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그래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오랫동안 이 원리를 전제로 경쟁해 왔다. 더 강력한 엔진을 만들고, 더 효율적인 모터를 개발하고, 차체를 가볍게 하고, 타이어가 지면을 더욱 단단하게 붙잡도록 설계했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지면과의 관계를 개선해 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공기의 흐름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수록 공기는 저항이 된다. 그러나 공기의 흐름을 잘 이용하면 차체를 지면 쪽으로 누르는 다운포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엔지니어들은 이 힘을 활용해 자동차가 빠른 속도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리고,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image.pngIn the Wind Tunnel with the New Mercedes-AMG GT Black Series ⓒMercedes-Benz 유투브


그런데 테슬라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전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 듯하다.


'자동차가 반드시 도로에 붙어 있어야 할까'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지더라도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어떨까'


2026년 10월 15일, 테슬라가 공개한 2세대 로드스터의 시연은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텍사스주 스페이스X 시험시설에서 선보인 2세대 테슬라 로드스터는 거대한 곡선형 구조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량은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더니 수직 구간을 넘어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도 움직였다. 잠시 후 구조물에서 떨어진 자동차는 공중에서 차체를 회전시킨 뒤 다시 바퀴로 착지했다.

영상 출처: Tesla 공식 YouTube, 「The Ramp | Roadster」(2026)

또 다른 시연에서는 여러 대의 자동차 위를 공중으로 뛰어넘었다. 자동차라기보다 우주 탐사선의 착륙 실험을 보는 듯한 장면이었다.

영상 출처: Tesla 공식 YouTube, 「The Ramp | Roadster」(2026)


테슬라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 약 96.6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0.81초가 걸렸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물론 이는 테슬라가 공개한 시연 결과다. 독립적인 성능 검증을 거친 양산차의 공식 기록과는 구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공개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록을 몇 초 단축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더 빠른 자동차를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테슬라는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경쟁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동차가 움직이는 방법 자체를 다시 질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중력을 없앤 것이 아니라

다른 힘을 만들어냈다

로드스터가 거꾸로 움직이는 장면을 보면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중력은 그대로였다. 시연이 진행되는 내내 자동차를 지구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테슬라가 시도한 것은 중력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중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별도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 중심에 차체 하부에 적용한 능동형 흡입 시스템이 있다. 일반적인 자동차는 차체의 무게로 타이어가 노면에 눌린다. 이때 생기는 수직항력과 마찰력 덕분에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고성능 자동차는 여기에 공기의 흐름까지 활용한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수록 공기는 차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저항이 된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은 공기를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차체의 형태와 스포일러 등을 설계해 공기저항을 줄이는 한편, 차체를 도로 쪽으로 누르는 다운포스를 만들어냈다. 다운포스는 타이어가 노면을 더욱 강하게 붙잡도록 도와 고속 주행과 코너링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즉, 고성능 자동차는 주행 중 발생하는 공기역학적 다운포스를 활용해 접지력을 더 높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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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타이칸 터보 S의 공기역학 설계. 차체 주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해 공기저항을 줄이고 주행 안정성을 높인다. (사진: Porsche 뉴스룸)

문제는 일반적인 공기역학적 다운포스가 자동차의 속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느리게 움직이거나 멈춰 있다면 충분한 힘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테슬라는 이 문제에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흡입팬 방식을 활용했다. 흡입팬은 차량 아래쪽 공기를 배출해 압력 차이를 만든다. 차량 주변의 상대적으로 높은 압력이 차체를 노면 쪽으로 누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통해 자동차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팬이 충분한 압력 차이를 만들어낸다면 강한 접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번 로드스터의 흡입 시스템이 약 2G 수준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수치는 제조사가 제시한 것으로, 실제 성능에 대한 별도의 검증은 필요하다.


흡입팬을 이용해 접지력을 높이는 기술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 모터스포츠에서도 팬으로 차체를 노면에 밀착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번 로드스터가 눈길을 끈 것은 이러한 기술을 거꾸로 매달려 움직이는 상황까지 확장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공중에서 차체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다른 기술이 사용됐다. 스페이스X의 항공우주 기술과 연결되는 냉가스 추진장치다.


냉가스 추진장치는 고압으로 저장한 가스를 노즐을 통해 분사하고, 그 반작용으로 힘을 얻는다. 연료를 태우는 일반적인 화학로켓과 달리 압축가스가 팽창하면서 발생하는 힘을 이용한다. 가스를 한 방향으로 분사하면 차량에는 반대 방향의 힘이 작용한다. 노즐의 위치와 분사 방향에 따라 차량을 앞으로 밀거나 위쪽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차체를 회전시키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로켓 버전에 10개의 냉가스 추진장치를 배치했다고 설명했으며, 대용량 압축가스 저장 시스템도 소개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비행 자동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압축가스는 사용할수록 줄어든다. 짧은 순간 강력한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것과 오랜 시간 공중에 머물며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속적인 비행을 위해서는 차량의 무게를 지탱할 힘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이동 방향과 자세를 안정적으로 제어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할 안전 체계도 갖춰야 한다.


로드스터가 보여준 것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완성이 아니라, 기존 자동차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짧은 공중 기동과 자세 제어의 가능성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테슬라는 자동차의 기존 기술을 모두 버린 것이 아니었다.


바퀴와 모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그동안 자동차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힘과 제어 방식을 추가했다. 중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힘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동차를 움직이는 방법이 달라졌다.


우리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자연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해 온 방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9년을 기다린 자동차는

왜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을까

2세대 테슬라 로드스터가 처음 소개된 것은 2017년이다. 당시 테슬라는 전기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어 했다. 전기차는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자동차의 강력한 성능이나 운전의 즐거움을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여전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포르쉐 같은 내연기관 스포츠카를 떠올렸다.


테슬라는 그런 인식에 도전했다. 2017년 11월 공개한 2세대 로드스터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성능을 내세웠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6km)까지 가속하는 데 1.9초, 최고속도는 시속 250마일(약 402km) 이상,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무려 620마일(약 998km)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양산차에서 검증된 성능은 아니었다. 테슬라가 앞으로 구현하겠다고 제시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수치였다. 그 숫자만으로도 전기차가 기존 슈퍼카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image.png2017년 공개된 2세대 테슬라 로드스터 콘셉트 차량. (사진: Courtesy of Tesla, Inc.)



하지만 테슬라의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당초 2020년으로 제시했던 생산 일정은 여러 차례 연기됐다. 소비자들은 기다렸고, 테슬라는 개발을 이어갔다.


그사이 자동차 산업도 빠르게 변했다. 전기차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됐고, 강력한 전기모터를 탑재한 고성능 전기차도 속속 등장했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가속력은 이제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경쟁하는 영역이 됐다. 2017년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성능이 9년이 흐른 뒤에는 이전만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는 2026년 로드스터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6년 공개 행사에서 테슬라는 Performance, Thrust, Rocket이라는 세 가지 구성을 소개했다. 기존의 전기 구동계에 능동형 흡입 시스템과 냉가스 추진장치를 결합해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었다.


차량의 주행거리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2017년에는 한 번 충전으로 620마일을 주행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약 300마일 수준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9년 동안 기술이 발전했는데 주행거리 목표는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배터리 구성이나 차체 설계, 추가 장비에 따른 무게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주행거리 목표가 달라진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공개에서 무엇을 강조했는지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2017년에는 전기차도 내연기관 슈퍼카보다 빠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반면 2026년에는 자동차가 반드시 도로에 붙어 움직여야 하는지, 지면에서 떨어진 순간에도 자동차 스스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는 없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가에서, 자동차는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로 질문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이 차이가 흥미로웠다.


생각해 보면 기술은 언제나 더 높은 성능을 향해 발전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오랫동안 엔진의 출력을 높이고, 가속 시간을 단축하고, 연료 효율과 주행거리를 개선하는 데 힘써왔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지금도 중요하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으로서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갖추었는지 보여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드스터가 공중에서 차체를 회전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시속 300km로 달릴 수 있다는 것과 공중에서 자신의 자세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최고속도가 높다고 해서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빠르게 달리지 못하더라도 별도의 추진장치가 있다면 공중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동차의 성능이 얼마나 좋아졌는가를 넘어, 자동차에 어떤 능력을 더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셈이다.


물론 새로운 능력이 반드시 유용한 것은 아니다. 공중 기동 능력이 모든 자동차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로드스터의 공중 기동이 실제 도로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는 앞으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테슬라가 기존 자동차에서 중요하게 여겨온 성능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테슬라는 자동차 업계, 더 나아가 모빌리티 시장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셈이니.


어쩌면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더 좋은 답을 찾는 것만큼이나 지금까지 풀어온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지 다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자동차와 우주선의 경계가 무너질 때

로드스터를 보면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자동차를 만드는 데 우주선의 기술이 활용됐다는 사실이다.


테슬라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이고, 스페이스X는 로켓과 우주선을 개발하는 회사다. 두 기업 모두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해 있다. 자동차는 도로 위를 달리고, 우주선은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향한다. 두 기술이 다루는 환경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로드스터가 지면을 벗어나 공중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산업이 오랫동안 별도로 발전시켜 온 기술이 만나는 지점이 생겼다.


로켓과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자신의 자세와 방향을 제어할 때도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산업이지만 움직임을 제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스터는 자동차공학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항공우주 분야에서 발전시켜 온 기술을 가져왔다. 그 결과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기존보다 넓히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image.pngNASA의 오리온 우주선에 적용된 추진 시스템. 작은 반작용 제어 추진장치는 우주선의 방향과 자세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NASA)


나는 이 대목에서 기술의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자동차 기술과 항공우주 기술을 서로 다른 분야로 구분한다. 대학에서도 전공이 나뉘고, 기업에서도 조직과 연구개발 분야가 구분된다. 이는 각 분야가 다루는 문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구분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가 언제나 우리가 정해놓은 학문의 경계를 따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공중에서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는 항공우주 기술이 필요해질 수 있다.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려면 기계공학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재료공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복잡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간정보와 교통공학, 데이터 분석, 행정과 정바카라에 대한 이해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의 기술인가보다 지금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지식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테슬라의 사업 전략에서도 흥미로운 대비가 나타난다.


테슬라는 자율주행과 로보택시를 미래 성장의 중요한 방향으로 강조하고 있다. 운전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이 직접 운전하는 즐거움을 극단까지 끌어올리려는 로드스터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는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차다. 다른 하나는 운전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한 자동차다. 언뜻 보면 서로 반대되는 방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두 기술은 모두 인간과 자동차의 관계를 바꾸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로보택시는 이동하는 동안 인간이 반드시 운전해야 한다는 전제에 도전한다. 반면 로드스터는 인간이 직접 자동차를 조종할 때 경험할 수 있는 움직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탐색한다. 하나는 이동의 부담을 줄이려 하고, 다른 하나는 이동의 경험을 확장하려 한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언제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술은 우리가 해야 했던 일을 대신한다. 또 어떤 기술은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같은 기술의 발전이라도 인간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다.


로드스터 역시 대량 판매를 통해 테슬라의 매출을 바카라임질 주력 자동차라기보다는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에 대한 구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동차에 가깝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이런 차량을 헤일로카(Halo Car)라고 부른다.


헤일로카가 반드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일 필요는 없다. 기업이 어떤 기술에 도전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상징성이 실제 제품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일은 다르고, 극단적인 성능이 곧 안전성과 경제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기업이 당장의 판매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는 이유는 생각해 볼 만하다. 지금의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기술을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다른 산업에서 전혀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결국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궁금해한다. 그러나 연구를 이어갈수록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익숙하게 사용해 온 방법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드스터가 자동차에 우주선의 기술을 가져온 것처럼, 어떤 문제의 해답은 전혀 다른 분야에 있을 수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전문성이 앞으로도 중요한 이유는, 그 안에만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가상세계에서는 쉬운 일이

현실에서는 왜 어려울까


가상세계에서 자동차를 공중으로 띄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이나 가상현실 환경에서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거나 벽을 통과하는 모습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중력을 약하게 설정하거나 아예 없앨 수도 있다. 물체가 공중에서 회전하다가 완벽하게 착지하도록 움직임을 설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자동차는 다르다. 현실의 자동차에는 질량이 있다. 공기와 마찰하고,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부품은 열과 진동에 노출된다. 센서는 오차를 발생시키고, 제어 명령이 실제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미세한 지연이 발생한다. 흡입팬이 만들어내는 압력도 노면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냉가스 추진장치는 저장된 가스의 압력과 양에 영향을 받는다.


이 모든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가상환경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한 실험이 현실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을 모두 실제 자동차로 시험할 수도 없다. 막대한 비용이 들고, 실험에 실패하면 차량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이 중요하다. 실제 자동차의 특성을 수학적 모델로 표현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움직임을 계산해 보는 것이다.

추진장치가 조금 늦게 작동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차량의 무게중심이 달라지면 공중 회전은 어떻게 바뀔까.
특정 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가상환경에서 먼저 분석하면 실제 시험에서 확인해야 할 위험을 줄이고 개발 과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트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디지털트윈은 현실의 객체나 시스템을 디지털로 표현하고, 현실의 데이터와 모델을 활용해 상태를 이해하거나 변화를 분석하는 기술적 접근이다.


단순히 자동차의 외형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단순한 외형 복제가 아니다. 자동차를 3차원으로 정교하게 그렸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자동차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량의 무게와 무게중심, 추진력과 회전력, 타이어의 특성과 접지 상태, 제어 시스템의 반응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가상의 로드스터를 만들어 공중 회전을 실험한다고 가정해 보자. 모델이 완벽한 물리 법칙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근사와 가정으로 구성된다.

추진장치가 정확히 어느 순간에 어느 정도의 힘을 발생시키는가.
외부 공기의 흐름이 차체의 회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차량의 무게중심은 저장된 가스가 소모되면서 얼마나 달라지는가.
노즐 하나가 예상한 것보다 늦게 작동한다면 차량은 어떤 방향으로 회전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모델과 실험 데이터, 실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모델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가상환경에서 계산한 결과와 실제 실험 결과가 다르다면, 그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를 찾아야 한다. 잘못된 가정을 수정하고, 누락된 변수를 보완하고, 불확실성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가상에서 실험하고, 현실에서 검증하고, 다시 가상의 모델을 개선하는 일. 이러한 반복이 쌓일수록 디지털 모델은 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디지털트윈이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의 복잡성은 언제나 모델보다 크다. 우리는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변수와 관계를 충분히 잘 설명하는 모델을 통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여기서

가상융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가상세계가 반드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간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에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실험을 안전하게 검토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미리 분석하며, 그 결과를 더 나은 현실의 선택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도시와 산업시설, 로봇과 자율 이동체에도 같은 생각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공간 속 물체들의 관계를 분석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판단을 지원할 수도 있다. 공간정보가 현실의 위치와 구조를 표현하고, 디지털트윈이 시스템의 상태와 변화를 분석한다면, 공간지능은 공간적 관계를 이해하고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활용하려는 연구와 연결된다.


세 기술은 서로 다르지만 현실의 공간을 이해하고 활용한다는 점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가상환경에서 얻은 분석 결과가 곧바로 현실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델은 현실의 모든 조건을 담을 수 없고, 데이터에는 오차와 누락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의 판단 역시 잘못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가상세계를 얼마나 화려하게 만들었는가보다 그 결과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가상융합의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대신할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



우리가 정말 넘어서야 할

한계는 무엇일까


로드스터의 시연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공중에서 회전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기능이 실제 도로에서 필요하다는 사실은 다른 문제다.

압축가스 저장장치의 안전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추진장치 일부가 고장 나더라도 차량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 일반 도로에서 공중 기동을 허용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성능을 보여주는 일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디지털트윈도 다르지 않다.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 가상도시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시스템이 실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성과라고 평가해야 할까.


기술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그 가능성을 검증하고, 안전성과 경제성, 실제 필요성까지 살펴야 한다.


연구를 할수록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만큼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상념들이 있다.

우리도 각자의 중력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온라인 게임에서 맡은 바카라임이 커진다. 가족을 돌봐야 하고, 건강도 예전처럼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믿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알게 된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다른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조금씩 현실적이 된다. 어떤 꿈은 미뤄두고, 어떤 도전은 포기한다.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날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2세대 테슬라 로드스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한계라고 믿고 있는 것 가운데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동차가 중력을 없앨 수 없듯 우리도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맡은 바카라임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려놓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젊었을 때는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중요했다. 더 많은 성과를 내고, 남들보다 앞서가고, 조금이라도 일찍 원하는 자리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보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보다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성장의 의미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모른다.


젊었을 때는 내가 가진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오랫동안 걸어온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만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선택을 과거의 관성에만 맡기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걷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도 이 목표가 내게 중요한가.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지 않은 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드스터는 9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더 빠르고 더 멀리 달리는 자동차를 목표로 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 변화가 실제 자동차 산업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지금까지 더 나은 답을 찾으려 노력해 왔는데, 혹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할 순간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상융합을 연구하는 일도,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일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가능성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다른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미래형 루프로드와 황금빛 하이퍼카.png

중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중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을 모두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까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가끔은 다시 질문해 보는 일.


- 2026년 10월 18일 광화문덕 씀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