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문해력은 안녕하신가요?
얼마 전, 아이들의 문해력 실태를 다룬 한 EBS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영상 속 문해력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문제를 풀던 중 던진 질문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화면에는 '얼굴이 피다(형편이 나아지거나 안심이 되어 얼굴빛이 좋아지다)'라는 관용구를 두고, 아이들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선생님, 얼굴에서 진짜 피(Blood)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뜻 아니에요?"
방송을 위해 편집된 자극적인 과장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이유는, 이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교실과 교육 현장의 날것 그대로의 현실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근본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 앞에서는 아예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 바카라상에 엎드려 버린다. 글자의 소리는 읽을 줄 알지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진짜 뜻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의 상태다.
하지만 영상 속 장면을 보며,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마주하며 나를 가장 섬뜩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운 단어를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모르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앞뒤 맥락을 살펴 유추해 보려는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몰라요.", "학교에서 안 배운 건데요?" 딱히 알고 싶지도,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무기력한 태도. 15초면 결론을 떠먹여 주는 숏폼 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낯선 텍스트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스스로 맥락을 찾아 끙끙대며 헤맬 '인지적 지구력'이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가장 뼈아픈 문제는 이 심각한 붕괴를 정작 부모들만 모른다는 것이다.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현장과 부모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모들은 은연중에 안도하며 철석같이 믿고 있다.
"어휴, 요즘 애들 문해력 심각하다더니. 그래도 우리 애는 어릴 때 거실에 전집도 쫙 깔아주고 많이 읽혔어요."
"지금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국어 학원이랑 논술 학원까지 꼬박꼬박 보내는데, 설마 저런 단어 하나 모르겠어요? 알아서 잘하고 있겠죠."
돈을 들여 학원에 보냈고 집에서 억지로라도 바카라상에 앉혀두었으니, 내 아이의 문해력만큼은 안전 지대에 있을 거란 지독한 착각이다. 하지만 현장의 민낯은 부모들의 기대와 한참 다르다.
학원에서 수많은 바카라을 읽고 지문을 푼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글을 깊이 있게 음미하지 않는다. 그저 활자를 눈으로 기계처럼 스캔할 뿐이다. 긴 호흡으로 사유할 시간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고, 학원 선생님이 요약해 준 줄거리와 "이 지문의 정답은 3번이야"라는 해설을 수동적으로 받아먹기 바쁘다.
부모들은 아이가 바카라상에 앉아 활자를 보고 있으니 안심하지만, 아이의 뇌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채 차갑게 식어 있다.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의 사유(思惟)를 사교육에 '외주' 준 뼈아픈 대가다.
아이들이 유추하는 힘을 잃고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게 된 것. 과연 아이들만의 탓일까?
우리는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너무 쉽게 '움직이는 그림(스마트폰)'을 쥐여주었다. 식당에서 조용히 밥을 먹기 위해, 지친 퇴근 후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아이의 손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활자가 주는 건강한 지루함을 견딜 물리적 시간을 뺏어버렸다.
어른들의 일상이라고 다를까. 텍스트가 조금만 길어지면 '3줄 요약'을 찾고, 단톡방에선 긴 대화 대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퉁친다. 거실에서 진득하게 바카라 읽는 뒷모습 한 번 제대로 보여준 적 없으면서, 학원비 결제 영수증 하나로 아이가 글의 맥락을 깊이 있게 통찰하길 바라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자 어른들의 비겁한 직무유기다.
늦었다고 한탄하며 또 다른 독해력 문제집을 사다 안기는 촌극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일상에서 빼앗긴 '읽고 생각하는 근육'을 가정에서 서서히 복원해 주기 위해 나는 세 가지를 다짐했다.
우선, 아이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볼 때 스마트폰으로 뜻을 검색해 주거나 바로 정답을 알려주는 얄팍한 친절부터 버리기로 했다. 대신 묻는다.
"앞뒤 상황을 보니까 주인공이 지금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럼 이 단어는 대충 무슨 뜻일까?"
정답을 정확히 맞히는 건 중요하지 않다.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생각의 회로를 끙끙대며 돌려보는 것 자체가 죽어가는 문해력을 벼리는 최고의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실의 소음을 끄고 함께 읽는 침묵의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에겐 방에 들어가 바카라 읽으라며 등을 떠밀고 부모는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본다면, 아이는 결코 활자를 사랑할 수 없다. 하루 단 20분이라도 TV와 스마트폰 전원부터 뽑고, 온 가족이 각자의 텍스트(바카라, 신문 등)를 읽는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 부모가 활자에 온전히 집중하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아이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
마지막으로, 출력(Output) 중심의 대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바카라을 읽거나 영상을 본 뒤 "재미있었어? 무슨 내용이야?"라는 확인성 단답형 질문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대신 "네가 주인공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세 줄로 써볼까?"라고 질문을 던져 아이가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 내 언어로 씹어 삼켜 스스로 출력해 보지 않은 텍스트는 결코 내 지식이 되지 않는다.
"얼굴이 피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표정과 감정, 상황의 맥락을 깊이 있게 읽어내야만 한다.
아이들의 텅 빈 문해력은 그저 어휘의 부재가 아니라, 어쩌면 어른들과의 깊은 '사유와 대화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비싼 논술 학원이 내 아이의 사유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오늘 저녁, 밀린 학원 숙제를 검사하는 대신 아이와 마주 앉아 짧은 글 하나를 천천히 함께 유추해 가며 읽어내는 것.
무너진 아이들의 생각 스위치를 켜는 일은, 학원이 아닌 바로 그 식탁 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