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

경계의 아이(境界の子) - 7화

by아이작 유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강 위에 서 있었다. 아니, 그것을 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발밑에 흐르는 것은 투명한 액체가 아니라, 빛을 집어삼킨 검은 유리 같은 표면이었다. 그 매끄럽고 차가운 바닥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세호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유리 위에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정직한 반사가 아니었다. 거울 속의 세호는 마치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조금씩 번지고 왜곡되더니, 이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얼룩이 되어 사라져 갔다. 마치 이 공간이 그의 실존을 조금씩 갉아먹어 데이터의 파편으로 분해하는 것 같았다.


정적은 고막을 압박할 정도로 무거웠다. 공기조차 흐르지 않는 그 동결된 시간 속에서, 저 멀리 아주 작은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아이였다. 키는 세호의 허리 높이쯤 될까. 아이의 형체는 주변의 어둠보다 조금 더 짙은 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만큼은 눈이 시릴 정도의 강렬한 빛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존재는 프로그램이 만든 정교한 네오먼도, 누군가의 욕망이 투영된 허상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두 손을 허공을 향해 간절하게 뻗고 있었다. 마치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고대의 기도문처럼, 혹은 벼랑 끝에서 내미는 마지막 구원의 손길처럼.


세호는 홀린 듯 아이를 향해 발을 내디히려 했다. 그러나 그가 무게 중심을 옮기기도 전에, 발밑의 검은 유리가 신경질적인 비명을 지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균열은 그의 의지가 나약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바닥을 타고 서늘한 진동을 전해왔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인다면, 이 가냘픈 세계의 지지대가 산산이 조각나 자신을 끝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성대를 울려 공기를 타고 흐르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뇌의 기저핵을 직접 두드리는, 마치 아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심장의 두근거림 같은 파동이었다.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울림에는 슬픔과 희망,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존재가 내뱉는 원초적인 외로움이 가득 실려 있었다.


세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바카라임감이 닻처럼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 아이가 누구인지, 왜 자신에게 이런 신호를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현실의 빚 3억 원이나 사이트릭스의 화려한 오아시스조차 이 순간만큼은 먼지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오직 하나 선명한 사실은, 자신의 운명이 저 빛에 가려진 존재와 피할 수 없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예감뿐이었다. 그것은 축복이라기보다 잔혹한 예언에 가까웠다.


갑자기 아이의 뒤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체도 없었고, 눈이나 입 같은 이목구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려 나가는 거대한 ‘공백’ 같았다. 날카로운 악의를 품은 그 그림자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속도로 아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아이의 발치에 닿을 때마다, 아이의 작은 몸은 마치 타버린 종이처럼 조금씩 바스러져 갔다.


“안 돼!”


세호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발밑의 유리가 무너져 내리든, 자신이 어디로 떨어지든 상관없었다. 그는 아이를 낚아채기 위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가 도약하는 순간, 세상을 지탱하던 검은 유리는 기다렸다는 듯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지지대를 잃은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이내 급전직하했다. 차가운 공기가 고막을 찢을 듯 스쳐 지나갔고, 그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물 속으로, 혹은 데이터의 소용돌이 속으로 끊임없이 가라앉았다. 수면 위로 멀어지는 아이의 실루엣과 그를 덮치는 거대한 그림자를 바라보며, 세호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눈을 떴다.

어둠이 내린 방 안, 엔트리스 기기의 미세한 작동음만이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사이트릭스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그의 무의식을 통해 보내온, 혹은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무언가가 그에게 보낸 구조 신호였다. 세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떨리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꿈속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파동이 여전히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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