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

by왜살지

기는 바 안쪽 구석에 앉아 손님들을 지켜보며 지루해하고 있었다. 기는 카페 겸 바의 종업원이었는데,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사가 덜 된 듯한 인테리어를 갖춘,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 그런 매장이었다. 새벽까지 영업을 한다곤 하지만 12시가 되면 주문을 마감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 사장이 퇴근해버리면 기만 남는다. 요때쯤 되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런 소회에도 시들해지고 말아 바에 턱을 괴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된다. 기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도 피곤해지면 그때까지 남아 있는 손님들의 면면을 보고 그들이 사는 삶을 그 옆에 그려보는 것을 일종의 유희로 삼는다. 오늘은 가끔씩 와서 노트북을 켜고 분주하게 타닥거리는 파란 정장 입은 남자가 왔다. 살이 포동포동 찐 얼굴의 피부가 깐 달걀처럼 반질반질했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게 옆뒷머리를 짧게 깎고 앞머리를 넘긴 게 30대 초반 정도일 거라고 기는 짐작해버렸다. 그는 정장 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몸에 딱 맞는 블레이져를 걸치는데, 색깔은 날마다 바뀐다. 아마 어떤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리라. 퇴근하자마자 이곳에 오는 걸로 보아 업무의 연장인지 따로 어떤 공부를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는 그에게는 분명 연인이 있을 것이다, 그 연인은 그처럼 포동포동하고 반질반질한 피부에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괜찮은 회사를 다닐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연인과 전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연인이 있다면 밤늦은 시간에 이곳에 죽치고 앉아 있지는 못할 법도 해서 다시 없다고 결론지었다.

기는 그가 기에게 말을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큼성큼 다가와 바 앞의 의자에 앉아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예를 들면 이렇게.

“당신은 왜 취하지 않는 겁니까? 지금은 취한 자들의 시간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취해야 합니다. 차라리 방에 틀어박혀 잘 준비를 하던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던가, 아니면 연인과 살을 맞대고 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곳에 나와서는 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신처럼 앉아서 멍을 때리고 있는 걸 우리는 참을 수 없습니다. 돈 때문입니까? 그깟 돈 몇푼 때문입니까? 당신은 흉물스럽습니다.”

그러면 기는 이렇게 응수하리라.

“취한 사람의 피부가 반질거립니다. 취한 사람이 정장을 입고 노트북을 두드립니다. 취한 사람이 취한 사람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로 나와 넘어질 듯 비틀거립니다. 아니 그러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취해 있는 세상의 어디에서도 모두가 어깨동무할 공간은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말하자면 그건 취기의 인플레이션 같은 것입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는 또 대꾸하리라. 그럼 또 기가 맞받아치리라. 이런 식이다. 이렇게 서로 악담을 몇 번 주고받다 보면 그들도 결국 어깨동무하게 될까? 그러나 결코 이런 식으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것을 기는 다행스럽게도 여기며 또 한편으로는 아쉬워했다.

기는 한 번 씩 웃어버리고는 웃음을 감추었다. 취기의 인플레이션이란 걸 생각해 낸 자신이 기특스럽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노트북이 뿜어내는 빛을 얼굴로 반사하고 있었다. 창밖은 깜깜하고 힘빠지는 주백색 조명이 퍼지고 방향제와 알코올 냄새가 뒤섞인 냄새가 나고 졸음이 찾아왔다가 물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는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바 구석에 딱 붙어 고개를 벽에 기댔다. 기는 다음 희생자를 시야에 넣었다. 창가 자리에 바카라을 들고 앉아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르고 굽은 등은 희생자라기엔 이미 희생당한 사람처럼 보였고 술잔은 있으나 술에 취한 걸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 사람은 일주일 째 이곳에 와서 맨날 흑맥주를 시켜서 마시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듯 바카라을 읽다가 이때쯤 아차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식이었다. 왠지 희생당한 사람처럼 뒷모습이 처연한 이 여자에게도 기는 어쩔 수 없이 삶이 있어야 하겠지 생각했다. 추리닝 바지를 입고 검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안에도 검은 티를 입은 이 여자는 분명 회사원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또 일주일 전에 회사에서 잘렸거나 나왔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보니 그녀는 회사와는 뭔가 어울리지도 않는 듯한 인상이었다. 회사원이라면 길고 검은 생머리를 이토록 날것 그대로 길어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회사에서 잘렸다지만 회사원이었다면 이보다는 갖춰 입고 외출할 것 같았다. 가슴과 허리의 중간께까지 오는 머리는 그녀가 바카라을 읽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면 얼굴을 전부 가려버렸다. 아마 그녀는 대학생 내지는 갓 졸업한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이고, 기와는 또래일 거리고 기는 추측했다.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바카라을 들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그럼 실연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은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녀는 바카라을 읽으면서도 여기 나와 취해 보려는 것이겠지. 기는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을 다시 기특스러워하며 자신이 그녀와는 어느 정도 닮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런 사람과는 누구도 닮을 수 없겠다고 바꿔 생각했다. 오늘 보았던 그녀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여자가 기가 건네주는 흑맥주를 받을 때 고개를 약간 돌려 머리칼이 귀 옆으로까지 넘어갔던 것이다. 피부는 핏기가 하나도 없이 새하얬고 옅은 쌍커풀이 진 은행 크기만한 두 눈 주변에는 약간 그림자가 져 있었다. 콧날은 애굣살 근처에서부터 높아져서 인중을 약간 볼록하게 만들며 떨어졌고, 입술은 옅은 분홍색이었는데 화장기는 전혀 없었다. 기는 그녀의 얼굴에 매료되었지만 성적인 끌림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있었긴 했지만 있어야만 한다면 감정의 꼬불꼬불한 미로 저 끝에까지 가야 겨우 찾을 수 있을 그 정도로만 있었다. 오히려 인간과 외양이 비슷한 다른 종을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고 기는 생각했다.

기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볼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다. 바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걸어가 그녀의 뒤에 서서, 한 손은 테이블에 기대고 한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 드러난 귀에 대고 이렇게.

“왜 당신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습니까? 왜 당신은 호흡할 때 소리를 내지 않습니까? 왜 당신에게서는 체취가 거의 나지 않습니까? 당신의 흑맥주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까? 당신은 거의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애인과 함께 자신도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살아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도 바카라을 덮고 시간을 확인한 뒤 깜짝 놀라 집으로 뛰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이불을 덮고 은은한 취기가 감도는 터에 잠들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대꾸하겠다.

“나는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패배자가 됨과 동시에 내가 아니게 됩니다. 내가 나를 버리게 된 것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버린 애인은 얼마 있다 죽었습니다.”

기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었고 다시 바 구석에 앉아 있는 자기에게로 돌아왔다. 상상과 얼마 전에 본 영화들과 꿈속의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매장을 둘러보니 정장을 입은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창을 반으로 나누고 있는 벽에 달린 시계는 1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는 매장의 음악을 껐다. 바깥의 어둠과 소요가 매장 안으로 범람했다. 기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에 대해 종종 찾아오는 헛헛한 후련함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짜 여자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손님, 매장 마감할 시간이어서요.”

여자는 화들짝 놀라 기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시계로 향했고 그제서야 말귀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남은 흑맥주를 빠르게 비웠다. 여자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기는 다 마신 잔을 주방으로 가져갔다.

기는 그녀가 마신 맥줏잔을 닦으며 다시 본 그녀의 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대학생은 아닌 것 같았고 대학원생 아니면 그 즈음의 나잇대로 기보다는 약간 연상일 것이라고 다시 추측했다. 그러니 만약 그녀에게 말을 건다면 아까와는 다른 방식으로 걸어야 할 것이었다.

“저기요.”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주방 입구에 여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방의 쨍한 회백색 불빛이 그녀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앞쪽만을 비추었다. 그녀는 바람막이의 지퍼를 목끝까지 올리고 있었고 한 손으로 바카라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은행 크기만한 두 눈이 어찌할 줄 모르는 것처럼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어떤 결심을 한 듯 바카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기는 다 행군 맥줏잔을 건조대에 뒤집어 올리고 여자에게 대답했다.

“네?”

“행복빌라 사시죠?”

기는 졸업하고 기숙사에 나와서 잠깐 취업이 될 때까지 작은 빌라 반지하 원룸에 살고 있었다. 반지하가 악명높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잠깐 살고 나갈 것이었기에 괜찮았다. 월세 계약이 끝날 때까지 취업이 안 된다면 그냥 서울을 뜰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기가 사는 집이 어딘지 알 수 있었을까? 기는 매장 밖에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낮에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방에서 잘 나가지도 않았다. 반지하 창문에는 시트지를 붙여 놓았고 창을 잠깐 열어 두었다 해도 기의 방을 훔쳐보고 있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었다. 있으려나? 기는 문득 발가벗은 듯한 기분이 되어 손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거기 살아요. 한 주 전에 이사왔어요.”

기는 아차 싶었는데 한 주쯤 전에 기의 옆집에서 남자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기는 낮잠을 자고 있었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러지 않았다면 누가 이사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면 기는 여자가 기를 언제 보았는지가 궁금해질 차례였다.

“아, 이사오셨구나, 몰랐네요. 그런데 저를 언제 봤나요? 본 일이 있었나요?” 기가 말했다.

“이사오고 나서 동네를 돌다가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거든요.” 여자가 말했다.

기는 속으로 상황이 불편해졌음을 깨달았다. 왠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옆집 사람이 일하는 곳의 단골이고 또 말까지 걸 수 있을까? 무슨 용건으로? 기는 방금 전까지 그녀의 양쪽 어깨에 걸어두었던 그녀의 두 삶을 다 지워내버리고 이마 위에 불편한 사람이라는 글씨만 남긴 뒤 짐을 챙겨 주방에서 나왔다.

“그럼 같이 갈까요? 잘 됐네요. 심심하지 않게.”

“좋아요.”

기는 매장 출입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그의 뒤에서 따라왔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야광충처럼 지구는 빛을 내고 있었다. 지하철이 땅속을 뚫고 인간들을 실어 나르고 비행기가 성층권에서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고 있었지만 둘 주위에는 불꺼진 버스 몇 대나 지나칠 뿐이었다. 대로는 대체로 한산했고 둔직한 거인같은 빌딩들이 둘을 굽어보았고 증권회사 전광판에서 어린 연예인이 화장품 광고를 하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으나 기는 아마 이렇게 물어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를 봤다고 해도, 왜 굳이 제게 말을 거셨나요? 모른 체 지내도 되지 않나요? 요샌 다 그러고 살던데. 어쩌려고 그랬어요?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하고 집앞에서 보면 인사해야 하고 매장에서 보면 나이니 직업이니 하는 것들을 서로 물어야 하잖아요. 바카라 많이 읽어서 똑똑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몰라요?”

여자는?

“밤길이 무섭잖아요. 피차 자주 마주칠 텐데 알고 지내는 게 뭐 어때서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저도 밥을 먹고 설사하고 취하기도 하고 토도 하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그러나 기는 묻지 않았고 여자도 이렇게 대답할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도로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여자는 자세히 보니 몸이 약간 굽어 있었는데 걷는 투가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아까 여자가 말을 했을 때 말투는 또 어땠는가! 그녀의 말은 입 안에서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울렸다. 말할때 입을 벌리긴 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달리던 오토바이가 택시 앞에서 핸들을 급하게 꺾었고 택시기사는 경적을 빠앙-하고 울렸다. “악!” 하고 여자가 주저앉았고 옆구리에 끼고 있었던 바카라이 보도블록 위에 떨어졌고 여자는 두 손으로 귀를 꽉 막고 부들부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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