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는 상추를 씻다가 상춧잎 사이에 웅크린 달팽이 하나를 발견했다. 작고 동그란 모양의 흙갈색 껍데기가 상춧잎 표면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기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여기 달팽이가 있는데.” 엄마는 선홍색 삼겹살을 한 장 한 장 프라이팬에 올려 놓고 있었다. “그래? 아빠 밭에서 따라왔나보다.” 기의 아빠는 한 달 전부터 주인 없는 땅에 부추와 상추, 고추 등 뿌리기만 하면 쉽게 싹이 나는 채소들을 키웠다. “이걸 어떡하지?” 기가 엄마에게 물었다. “버려야지 어떡해. 이따가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 버려.” 기는 상추잎에서 달팽이를 뜯어내 손등 위에 올려놓았다. 끈적끈적한 점액이 나와 기의 손등을 간지럽혔다. 이윽고 달팽이의 미끈한 몸이 껍데기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팡이처럼 생긴 두 눈이 머리에서부터 솟았다. 기는 문득 자신이 벌써 스무살이며, 여태껏 집에서 뭔가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는 고기를 굽고 있는 엄마의 등을 보았다. 기는 어렸을 때 강아지가 키우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던 것을 기억했다. 엄마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둘 앞으로 운동복을 입은 한 여자가 강아지를 산바카라시키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에 누룽지빛이 된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걷다가 아파트 화단의 풀냄새를 맡았다. 기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울까?” 엄마는 운동복 입은 여자를 앞지르며 말했다. “기야, 엄마가 강아지를 키우면 기한테 좋을까? 그러면 엄마가 기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이 줄어들잖아. 그렇지 않아?” 기는 샐쭉한 표정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풀잎들 사이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기는 씻어서 말려 놓은 배달음식 통에 아직 안 씻은 상추 몇 개와 함께 달팽이를 넣었다. “상추 빨리 씻어. 고기 다 구웠다.” 기는 상추를 마저 씻고 통을 재빨리 자기 방 바카라상 위에 놓았다. 그날 저녁 기는 핸드폰으로 달팽이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기의 방으로 온 달팽이는 동양 달팽이라는 종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발에 채이는, 흔히 볼 수 있는 달팽이였다. 기는 달팽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더 찾아보았다. 거창한 게 필요하지는 않은 듯했다. 먹이는 상추 같은 채소류, 과일 껍질 등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가 텃밭에서 다양한 채소들을 충분히 많이 가져다 놓을 것이었다. 인터넷에는 달팽이 키우기 전용 흙이나 전용 통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달팽이를 오래 건강하게 키우려면 이런 용품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기는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앞두고 있었다. 기는 용돈도 받지 않았고, 수중에는 돈이 언제나 빠듯했다. 기는 핸드폰을 놓고 바카라상 앞에 서서 플라스틱 통 안에서 꾸물거리는 달팽이를 보았다. 달팽이는 껍질에서 나와 있었다. 뾰족하게 나온 두 눈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달팽이가 지나간 듯 보이는 상추의 표면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벌써 곳곳에 작은 연두색 똥이 보였다. 달팽이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최대한 신경써서 키우다가 문제가 되는 징후가 보이면 바깥에 풀어주면 되는 게 아닐까? 기는 이렇게 생각하고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덮었다. 뱃속에서는 그날 먹은 삼겹살이 더부룩하게 소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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