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돌풍이 온몸을 강타했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 멀리 떨어진 실루엣을 향해 걸었다.
하연이 서 있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휘몰아치는 절벽 끝자락에 꿋꿋이 서 있었다.
“…하연아.”
나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뒤돌았다.
“오랜만이네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말투였지만,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인 그녀의 표정은 가녀린 미소가 그어져 있었다.
“잘 지냈어요?”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안부를 물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일상적인 질문이었다. 내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그럭저럭. 너는?”
“전 잘 지냈어요.”
그녀는 방긋 웃었다. 파도가 바위를 학대하는 불온한 물소리가 배경음으로 휘몰아쳤다. 절벽 위에 선 그녀의 존재 또한 하나의 악기로 비유할 수 있다면 내 눈앞의 장면은 심각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나는 걸었다.
“아, 거기까지. 다가오지 마요.”
그녀가 손바닥을 보이며 경고했다. 나는 멈췄다.
“…위험해. 이리 와.”
“싫어요.”
그녀가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웃었다. 허리 뒤로 두 손을 잡고 뒤돌더니 메아리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여행을 다녔어요. 돈이 너무 많더라고요. 여기저기 돌아다녔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것도 보고…. 세상에 신기한 게 정말 많더라고요. 난 그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하연은 작게 웃음 소리를 냈다. 나는 속이 뒤틀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난 여기 죽으려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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