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기억

by남궁인숙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아 영화,

제인 마치와 양가휘 주연의 《연인》을

감상했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일까."

1992년 영화 《연인》을 보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젊은 날에는 그저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법한 영화가 세월이 흐른

뒤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1920년대 말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을

배경으로 가난한 프랑스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남성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메콩강을 건너는 배에서

시작된다.

낡은 옷을 입고 남자용 중절모를 쓴

어린 소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잘 차려입은 옷과 고급 승용차는 그가

상당한 부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 만남은 처음부터 평등하지

않다.


소녀는 열다섯 살 반이다.

17세다.

남자는 성인이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다.

여기에 인종과 계급, 식민지 슬롯의

복잡한 질서까지 개입한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조건이

얽혀 있다.


소녀의 가족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가정은

불안정하다.

남자는 소녀에게 돈과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소녀의 가족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면서도

경제적 도움을 받아들인다.

그 장면들을 바라보며 사랑과 필요는

어디에서 구분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 사람이

제공하는 안정에 기대는 마음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의존이 관계를 유지하는

조건이 된다면, 두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한 사람은 아직 미성년자였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묘사하였지만 화면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 안의 관계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소녀가 처한

환경과 그녀를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가

더 눈에 들어온다.

소녀의 가족은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나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은

소녀의 관계와 맞물린다.

남자는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나이와 재산에서 비롯되는 힘의 차이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연인》은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가난과 계급, 성장과 권력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끝이 난다.

남자의 아버지는 프랑스 소녀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남자는 20년 전 가족이 정해놓은 결혼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소녀 역시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간다.


이별의 순간까지 소녀는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배가 출항하고, 자신이 살아온 땅과

사랑했던 남자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그녀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린다.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 감정이 있다.

함께 있을 때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리움이 과거의 모든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지나간 관계에서 아름다웠던

순간만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면 갈등은 희미해지고,

상처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기억은 사실을 그대로 보관하는

기록이라기보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 가깝다.



영화 속 소녀도 세월이 흘러 작가가 된다.

어느 날, 과거의 연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렀어도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았다면 평생

한 사람을 잊지 못한 남자의 순정을

생각하면서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오랜 세월 누군가를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관계가 올바랐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랑했던 기억과 관계의 정당성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기억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시절을 지나왔는지,

그때 무엇을 원했는지.


어쩌면 영화 속 남자는 소녀를 사랑했던

동시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젊은

날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녀 역시 한 남자를 기억하면서 가난하고

불안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를 바라보는 나만의

해석이다.


《연인》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되는 이유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자신에게 다른 선택을 하라고 말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고, 기억 속

사람은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남는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 그때의 관계를 다른

시선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젊은 날에는 사랑의 강렬함이 먼저

보였다면, 지금은 그 사랑을 둘러싼

조건과 바카라임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모든

행동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그 관계가 상대의 삶에 무엇을

남기는지도 중요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메콩강을 건너던

소녀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남성용 중절모를 쓰고 엄마옷을 입고,

강바람을 맞던 어린 소녀.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그 소녀처럼 미래를 모른 채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만남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하기도 한다.

사랑했던 사실은 남아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할

것인지는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연인》을 아름다운 사랑영화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한 소녀가 불안한 시대와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겪었던 관계, 그리고 훗날 작가가

되어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로 기억할 것이다.


사랑의 기억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아름답지 않았던 부분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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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남겨진 사랑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메콩강바람에 스친 그대

어린 날의 사랑은 멀어지고

떠나는 배 위에 눈물만 남아

그제야 내 마음을 알았네



우우~~~~

사랑했어요, 말하지 못한 그 말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

그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