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88.
자기 삶의 구체를 통과한 만큼
자기만의 자유에 닿는다
One’s freedom grows
through the long passage of the concrete
추상화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평범한 나도 그릴 수 있는 낙서와 난화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추상은 기초를 끝까지 구체화한 사람만 열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언어이자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삶도 비슷하다. 깊이는 대충 흉내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자유는 얽매임 없이 사는 일처럼 보였다. 기본이 몸으로 체화된 사람들. 성경의 인물과 예술가와 성현들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 그것을 보여 주었다. 본질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숨어있다.
1963년에 개관한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 고딕지구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바르셀로나 대성당 주변에 있다. 국내 전시회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의 초기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기에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이었다.
미술관은 15세기의 팔라우 베렝게르 다길라르(Palau Berenguer d'Aguilar) 궁전 5개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건물로 재탄생했다. 중세시대가 스민 골목 사이로 이 공간은 숨어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훅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고즈넉한 안뜰과 하늘을 품고 있다.
1934년부터 스페인 내전이 있었고, 피카소(Pablo Picasso)는 <게르니카> 작품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힌다. 피카소의 친구이자 비서인 사바르테스(Jaume Sabartés)는 프랑코 정권과 피카소를 오가며 박물관 건축을 진행한다. 정치적 문제로 입국을 할 수 없었던 피카소는 거주하고 있던 남프랑스에서 건축의 설계도와 모형을 제작하며 사바르테스와 함께 건축과정에 참여했다. 그 후, 바르셀로나시에서 '피카소 박물관'이 아닌 '사바르테스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건축 승인을 해버린다.
많은 우여곡절로 1963년에 피카소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살아생전 자신의 미술관을 보지 못했던 피카소는 '나의 보물상자는 이 바르셀로나에 있다'라고 할 정도로 큰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바르테스가 죽은 후, 그를 기리는 감사의 의미로 시녀들(Las Meninas) 대작을 기증하기도 했다.
피카소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그의 초기작품 90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상설전시도 4,000여 점에 달한다. 특히 국내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초기 작품과 청색시대 작품 컬렉션이 압도적이다. 1901~1904년 시기의 청색시대 작품은 무명화가로 지낸 우울한 시기와 더불어 소외된 사람들을 모델로 검푸른색이나 짙은 청록색으로 표현했다.
그는 1934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지냈기 때문에 카탈루냐의 문화나 모더니즘 화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1900년부터 파리 여행을 시작으로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지낸다. 이 두 도시를 중심으로 피카소의 청년기 시기인 '청색시대'가 만들어진다. 이 시기는 매우 사실적 기법이면서도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피카소의 작품을 엿볼 수 있다
위 그림은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 루이즈 블라스코(Jose Ruiz Blaco)가 그린 작품이다. 그의 고향 말라가의 미술학교에서 교수를 시작한 후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다. 화가로서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끌어 준 부분에서 피카소는 행운아였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바르셀로나 항구 가까이에 살게 된 피카소는 라 롯자(La Llotja)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이어간다.
1896년 그는 첫 대작인 첫 영성체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바르셀로나 미술 산업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이미 활동하던 화가들과 함께 전시될 만큼 주목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한 데생과 기초 훈련, 그리고 자기 주변의 삶과 풍경을 오래 관찰 시간이 그의 그림 안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과학과 자선(Ciencia y Caridad) 작품은 당시 유럽 슬롯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근대의학'과 '종교적 돌봄'의 두 가치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상을 받은 후, 피카소는 천재 소년 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첫 영성체(La Primera Comunión) 작품 역시 어린 나이에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전적 기법과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큰 캔버스의 대작들이다.
흔히 피카소를 형태를 해체한 추상화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초기 작품은 탄탄한 데생의 시간을 쌓았다. 인물과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고 정확하게 보는 법을 배웠다. 형태를 세우고, 비례를 익히고, 빛과 그림자의 질서를 몸에 익혔다. 그의 추상은 모두 그 기초 위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로워 보이는 선 하나에도 오랜 훈련과 관찰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본을 토대로 사실적인 구상화(具象化)에서 출발한 그의 추상화(抽象化)는 입체파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피카소가 형태를 해체하기까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세계를 바라보던 눈이 있었다. 그의 자유로움은 철저한기본을 통과한 뒤에야 어린아이 같은 그만의 예술세계에 닿는다.
건너뛰고 싶을 때가 있다. 반복되는 하루를 접고 어느 날 갑자기 원하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린다. 더 깊어지고 더 자유롭고 싶지만 그 사이를 지나야 하는 시간들을 생략하고 싶어진다. 글을 쓰고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좋은 글이 하루아침에 찾아올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읽고 쓰고,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반복할 때 마음에 드는 내 문장을 만난다. 사람의 삶 또한 자신만의 구체성을 오래 지나며 그 결대로 깊이와 자유를 만들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깊이는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자기 삶의 구체를 지나온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화려한 말보다 반복된 삶의 태도와 아이 같은 순전함을 본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낯선 하늘 아래서도 하루는 생활로 흘러간다.
새롭게 채워지는 감각들이 낡은 구체와 인식들 사이로 스며든다. 반복하는 하루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 안의 세계는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나에게 다가온 피카소의 일침>
전문가처럼 규칙을 배워라, 그래야 예술가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영감은 존재한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그대의 의무는 여러 사물을 상세히 검토하여 이를 실천에 옮겨 극복하는 힘을 기르고, 관조하는 능력을 연마하여,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되는 확신을 간직하고 이를 과시하지 않고 또한 은폐하지 않는 데 있다.
*아우레리우스 명상록. 아울렐리우스. 동서문화사. 2015.
사진. by mocal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