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밥짓기는 쉬운가, 어려운가

숨쉬기나 걷기 만큼 어려운 기술

밥짓기는 쉬운 일처럼 보입니다.

쌀을 씻고, 물을 붓고, 불을 켜면 됩니다. 전기밥솥을 쓴다면 더 간단합니다. 쌀을 씻어 내솥에 담고, 물을 눈금에 맞춘 뒤, 취사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말로 하면 이보다 쉬운 요리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짓기를 오랫동안 별것 아닌 일로 여겨왔습니다.

밥은 매일 먹는 것이고, 너무 익숙한 음식입니다. 특별한 재료를 손질하는 일도 아니고, 복잡한 양념을 맞추는 일도 아닙니다. 불 앞에서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요리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밥짓기는 그저 집안일의 일부, 식사의 준비 과정, 혹은 밥솥이 알아서 해주는 일 정도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밥맛은 늘 같지 않을까요.

전기밥솥에 귀도 밥짓기.jpg


같은 쌀을 써도 어떤 날은 밥이 질고, 어떤 날은 밥이 고슬합니다. 같은 밥솥을 써도 어떤 날은 밥알이 살아 있고, 어떤 날은 밥알이 뭉개집니다. 새 쌀과 묵은 쌀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다르고, 냄비밥과 전기밥솥 밥이 다릅니다. 쌀을 씻는 힘, 물을 잡는 양, 불리는 시간, 불의 세기, 뜸들이는 시간까지 작은 차이들이 밥맛을 바꿉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밥짓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좋은 밥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초 기술은 원래 그렇습니다. 걷는 일은 누구나 하지만, 좋은 자세로 오래 걷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글자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칼을 쥐고 재료를 자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재료의 결을 살려 일정하고 아름답게 자르는 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밥짓기도 그렇습니다.




밥은 단순한 요리입니다. 쌀과 물, 불과 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어렵습니다. 양념으로 감출 수 없고, 강한 향으로 덮을 수 없습니다. 재료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고, 물을 잡은 사람의 판단이 드러나며, 불을 다룬 방식이 밥알의 식감으로 남습니다. 밥짓기 기술이라고 다시마를 넣는다느니 기름을 떨어뜨린다느니 하는 것은 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밥을 가리는 기술입니다. 좋은 쌀로 제대로 밥을 지을 땐 필요가 없는 기술들이지요.



요리를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결국 물조절과 불조절과 간조절입니다. 그런데 밥에는 간조절이 없습니다. 소금도, 간장도, 양념도 넣지 않습니다. 그러니 밥짓기에서 남는 것은 물조절과 불조절입니다. 두 가지만 하면 되는 요리입니다. 얼마나 쉬운가요.


그런데 바로 그 두 가지가 어렵습니다.


물을 얼마나 넣을 것인가.
쌀이 이미 얼마나 물을 머금고 있는가.
오늘의 쌀은 햅쌀인가, 묵은 쌀인가.
알이 단단한가, 잘 무르는가.
불은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야 하는가.
끓어오른 뒤에는 얼마나 낮춰야 하는가.
언제 불을 끄고, 얼마나 뜸을 들여야 하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밥짓기는 더 이상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전기밥솥은 이 복잡함을 많이 덜어주었습니다. 훌륭한 생활의 도구입니다. 연탄불과 양은냄비로 밥을 짓던 시절, 3층밥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전기밥솥이 누구나 큰 실패 없이 밥을 지을 수 있게 해줍니다. 쌀을 대충 씻고 물을 조금 많게(혹은 적게) 잡아도, 어지간하면 먹을 만한 밥이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전기밥솥은 우리 식생활을 편하게 만든 좋은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좋은 밥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전기밥솥의 목표는 대개 실패하지 않는 밥입니다. 누가 어떤 쌀을 넣어도 크게 망하지 않는 밥, 평균에 가까운 밥을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편리함의 세계에서는 장점입니다. 그러나 밥맛의 해상도를 높이려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자동카메라와 수동카메라를 생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전문가는 자동에서 오히려 한계와 답답함을 느낍니다.


좋은 쌀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씻고, 그날의 상태에 맞게 물을 잡아도, 기계가 모든 과정을 평균으로 끌고 가면 쌀이 가진 개성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전기밥솥으로도 좋은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이 전기밥솥을 쓰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전기밥솥을 무조건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밥맛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적어도 한 번은 밥솥의 자동 과정 뒤에 숨어 있는 물과 불의 움직임을 직접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밥은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음식이기 전에, 쌀이 물과 불을 만나 변하는 과정입니다.


쌀은 밥이 되기 위해 열로 익어야 합니다. 쌀을 씻거나 불려서 얼마나 많은 물이 쌀알의 어느 정도까지 들어가게 하느냐가 첫 번째 관건입니다. 그 다음엔 이 수분을 어떤 속도로 얼마나 익힐 것인가, 그것이 밥의 식감을 결정합니다. 강한 불로만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불을 끄고 뜸을 들이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이 과정 가운데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밥은 달라집니다.

밥짓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작은 과정들입니다. 그리고 밥짓기를 배울 만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작은 과정들입니다.


쌀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씻으면 밥맛이 달라집니다. 물을 조금 더 정확히 잡으면 밥알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불을 조금 더 잘 다루면 같은 쌀에서도 다른 식감이 나옵니다. 단맛의 정도도 달라집니다. 뜸을 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먹는 순간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 밥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한입 먹자마자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씹다 보면 차이가 납니다. 밥알이 살아 있는지, 중심까지 고르게 익었는지,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는지,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밥맛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씹는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겁니다.


우리가 밥짓기를 쉽게 여겨온 이유는, 어쩌면 밥을 너무 자주 먹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밥은 늘 식탁에 있었습니다. 아침에도 있었고, 점심에도 있었고, 저녁에도 있었습니다. 반찬이 바뀌고 국이 바뀌어도 밥은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너무 익숙한 것은 쉽게 배경이 됩니다. 우리는 반찬이 맛있었던 식당은 기억하지만, 밥이 좋았던 식당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니, 애초에 밥이 좋기를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대체로 즉석밥만도 못한 밥들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밥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밥이 좋으면 식탁 전체가 달라집니다.

간이 센 반찬도 좋은 밥 위에서는 자리를 찾습니다. 담백한 나물도 밥과 함께 먹을 때 깊어집니다. 국물은 밥을 만나 한 끼가 되고, 장아찌 한 점도 좋은 밥 위에서는 충분한 반찬이 됩니다. 반대로 밥이 좋지 않으면 식탁 전체가 흔들립니다. 좋은 밥을 먼저 대하면 한 끼 식사의 흐름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먹으면 습관적으로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음미하고 배역을 정해줄 수 있게 됩니다. 한 끼의 식사를 스스로 오케스트라처럼 조율하고 지휘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진짜 미식가의 자질이겠지요.

그래서 밥짓기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밥짓기는 매일의 식탁을 바카라임지는 기술입니다. 화려한 요리는 아니지만, 가장 자주 반복되는 요리입니다. 특별한 날에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날을 지탱하는 기술입니다. 밥을 잘 짓는다는 것은 매일 먹는 한 끼의 밀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한 끼가 좋아지면, 삶의 바탕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물론 처음부터 매번 완벽한 밥을 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때로는 질게 됩니다. 때로는 되게 됩니다. 불이 조금 셀 때도 있고, 뜸이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쌀을 바꾸었는데도 예전 습관대로 물을 잡아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한 밥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면 다음 밥이 달라집니다. 왜 질어졌는지, 왜 중심이 덜 익었는지, 왜 향이 탁했는지 생각하는 순간 밥짓기는 배움이 됩니다.

밥짓기는 단번에 완성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감각이 쌓이는 일입니다. 오늘의 쌀이 어제와 다른지 살피고, 물을 조금 줄일지 늘릴지 생각하고, 밥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듣고, 뜸이 끝난 뒤 밥알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밥솥의 남은 시간만 보던 사람이 쌀의 상태를 보게 됩니다. 버튼만 누르던 사람이 밥알의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그때부터 밥짓기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기술이 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밥짓기를 당연한 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밥을 짓는 기술도 함께 당연한 것으로 밀어두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일수록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하는 일이 좋아지면, 매일의 삶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걷기나 숨쉬기는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제대로 된 한 걸음, 한 호흡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차리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밥짓기도 그와 같습니다.


밥짓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좋은 밥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밥짓기는 배울 만한 기술입니다.

이전 01화01. 밥이라는 일상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