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 없는 미식가?

그것은 어쩌면 슬픈 자화상

미식가라는 말이 흔해졌습니다. 좋은 식당을 많이 다니고, 와인과 커피를 알고, 고기의 숙성과 굽기를 말하고, 스시야의 샤리와 네타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우리는 미식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밥맛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고기의 부위는 따지고 커피의 산미는 말하면서, 와인의 품종과 산지, 숙성 때문에 큰 돈을 지불하면서, 매일 먹는 밥 앞에서는 갑자기 말이 줄어듭니다. 이 밥이 어떤 쌀로 지어졌는지, 언제 도정한 쌀인지, 어떻게 씻고 얼마나 불렸는지, 물과 불은 어떻게 다루었는지, 뜸은 충분했는지, 밥알이 살아 있는지, 향은 맑은지, 질척하게 달라붙지는 않는지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밥을 많이 먹어왔습니다. 그래서 밥을 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자주 먹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밥은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음식이지만, 바로 그 익숙함 때문에 가장 쉽게 무시되어온 음식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밥은 여전히 배경입니다. 반찬 옆에 딸려 나오는 흰 탄수화물, 고기를 먹고 난 뒤 허기를 채우는 마무리, 국과 반찬을 실어 나르는 바탕, 코스 요리의 끝에 형식처럼 나오는 무엇 정도로 취급됩니다. 그러니 밥맛도 그 수준에 머뭅니다. 질어도 넘어가고, 말라도 넘어갑니다. 오래 보온해서 냄새가 나도, 밥알이 뭉개져 있어도, 쌀의 향이 사라져도 반찬이 맛있으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국물이 있으면 말아 먹고, 양념이 있으면 비벼 먹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이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밥이 맛없으면 한식 전체가 무너집니다.


한식은 밥을 중심으로 짜인 음식 문화입니다. 김치, 장아찌, 젓갈, 나물, 생선구이, 국, 찌개는 모두 밥과 함께 먹을 때 제자리를 찾습니다. 간이 센 반찬은 밥 위에서 균형을 잡고, 담백한 반찬은 밥과 함께 깊어집니다. 국물은 밥을 만나 비로소 한 끼가 됩니다. 밥은 반찬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가 아니라, 반찬의 맛을 받아들이고 조절하고 완성하는 중심 재료입니다.


반찬이 아무리 좋아도 밥이 나쁘면 한 끼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좋은 생선구이 앞에 냄새나는 밥이 놓이면 생선의 향도 무너집니다. 좋은 나물 앞에 질척한 밥이 놓이면 나물의 섬세한 향도 제대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장이 훌륭해도 밥알이 뭉개져 있으면 입안의 균형은 흐트러집니다.


반대로 좋은 밥은 식탁 전체를 살립니다. 좋은 밥 위에 김 한 장만 올려도 충분한 한입이 되고, 장아찌 한 점도 제대로 된 반찬이 됩니다. 나물 한 젓가락도 좋은 밥과 만나면 식사가 됩니다. 반찬이 많아서 식탁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밥이 좋아야 식탁이 안정됩니다.


밥이 나쁘면 반찬은 점점 강해집니다. 밥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양념이 세지고, 짠맛과 단맛과 매운맛이 올라갑니다. 밥의 빈자리를 양념이 메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식탁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밥이 중심을 잡지 못하니 자극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취향 문제가 아니라 한식의 구조 문제입니다. 밥을 모르면 한식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고기맛을 알고, 술맛을 알고, 장맛을 알아도 밥맛을 모르면 한식의 중심을 놓친 것입니다. 한식은 밥 없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반찬만으로는 한식의 구조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밥과 반찬이 함께 놓이고, 함께 먹히고, 함께 한 끼를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밥을 너무 쉽게 포기했습니다. 식당에서 밥이 맛없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오래 보온한 밥이 나와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밥알이 죽처럼 뭉개져 있어도 반찬이 괜찮으면 넘어갔습니다. 쌀 냄새가 탁해도, 밥이 말라 있어도, 식은 밥을 다시 데운 듯한 밥이 나와도 그냥 먹었습니다.


이 관대함은 미덕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밥을 무시하면 쌀도 무시됩니다. 쌀을 무시하면 밥짓기도 무시됩니다. 밥짓기를 무시하면 물조절과 불조절도 사라집니다. 결국 밥은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흰 덩어리가 되고, 한식의 중심은 사라집니다.


좋은 밥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밥은 좋은 쌀에서 시작됩니다. 쌀을 조심스럽게 씻고, 그 쌀이 물을 어떻게 먹는지 살피고, 물을 정확히 잡고, 불을 제대로 쓰고, 뜸을 충분히 들여야 합니다. 밥은 단순하지만 허술한 음식이 아닙니다. 쌀과 물과 불과 시간이 정확히 만나야 하는 요리입니다.


그러므로 밥맛을 안다는 것은 감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밥맛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완성되는 일입니다. 밥알이 살아 있는지, 중심까지 고르게 익었는지, 표면이 무너지지 않았는지, 향이 탁하지 않은지, 물기가 과하지 않은지, 밥알끼리 불필요하게 들러붙지 않는지, 간과 향이 있는 반찬을 받아낼 힘이 있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좋은 밥은 반찬 없이도 자기 맛과 구조가 드러납니다. 물론 밥은 반찬과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밥 자체가 맛없다면 좋은 밥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국물에 말아야만 먹을 수 있는 밥, 양념을 얹어야만 넘어가는 밥, 짠 반찬 없이는 존재감이 없는 밥은 좋은 밥이 아닙니다.


좋은 밥은 식탁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반찬을 압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밥이 향신료처럼 튀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밥은 밥답게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담백하지만 비어 있으면 안 되고, 부드럽지만 뭉개지면 안 되며, 고슬하지만 설익으면 안 됩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밥짓기도 없습니다. 무엇이 좋은 밥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밥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밥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물이 많은 밥과 촉촉한 밥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슬한 밥과 덜 익은 밥을 구분하지 못하면 물조절도 불조절도 방향을 잃습니다.


밥을 잘 짓기 전에 먼저 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오늘 밥이 질었는지, 되직했는지, 뭉개졌는지, 향이 탁했는지, 중심까지 익었는지 봐야 합니다. “그냥 밥”이라고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밥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다음 밥을 고칠 수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안다는 것은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봤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미식가’들이 비싼 레스토랑의 음식 경험을 자랑합니다. 물론 경험치는 중요합니다만, 야구 경기를 스카이박스에서 봤다고 프로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전문 해설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의 중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식에서 그 중심은 밥입니다. 밥을 보지 못하는 미식은 한식 앞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을 놓친 미식입니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반찬이 무엇인가보다 먼저 오늘 밥이 어떤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가 무엇인가보다 먼저 이 집 밥이 제대로인가를 봐야 합니다. 내가 미식가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좋은 밥을 알아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밥을 다시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식이 바로 서고, 밥짓기가 기술이 되며, 쌀이 다시 귀한 재료가 됩니다.


밥에는 관심도 없고 맛있는 밥은 먹어본 적도 없는 미식가는, 어쩌면 빈곤한 일상을 채우기 위해서 외국의 깊이 있는 문화를 쫓아해야 했던 저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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