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봄부터 저녁이면 공원을 걷는다. 이어폰을 꽂고 혼자 걸으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공원 끝에는 원형정원이 있다. 나무 사이로 가려졌던 달이 그곳에서는 훤히 보인다. 정원을 두어 바퀴 걷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통화를 하다 보면 화제는 자꾸 바뀐다. 오늘 있었던 일에서 시작했다가 영화로 넘어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쓰는 글 얘기를 하기도 한다. 별것 아닌 말을 한참 늘어놓기도 한다.
“다음 글은 뭐 쓸 거야?”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 얼마 전부터 쓰던 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몇 마디만 하려 했다. 무슨 영화를 봤고, 거기서 한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쓰기 시작했다고. 그러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느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는지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썼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통화는 계속됐다.
평소에는 글을 쓴다는 걸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녀 앞에서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다음을 물어본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쓴다. 하지만 그가 정말 쓰고 싶은 건 소설이다. 약혼녀 이네즈와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틈틈이 원고를 고친다.
이네즈는 그런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 잘하고 있는 일을 두고 굳이 소설을 쓰려는 이유도, 파리에 머물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그녀에게는 현실적이지 않다.
어느 날 밤, 길은 혼자 파리의 거리를 걷다 길을 잃는다. 계단에 앉아 있을 때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잠시 뒤 오래된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춘다. 차 안의 사람들이 함께 가자며 손짓한다.
그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대의 파리다. 길은 그곳에서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고 헤밍웨이와 술을 마신다. 바카라에서만 보던 사람들이 눈앞에 앉아 문학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밍웨이는 길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원고를 보여주자고 한다.
길은 다음 날 원고를 들고 다시 그곳으로 간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스타인에게 건넨다. 그녀는 원고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낮의 파리에서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정이 지난 파리에서는 이미 소설을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글인지 물었고, 원고가 있다고 하면 읽어보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오래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산바카라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는 내가 잘 쓰는지 묻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는지도, 그걸 왜 계속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냥 다음 이야기를 물었다.
내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