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전공하면 취향도 고급스러워질까

고급스러움은 누가 정하는가

by사라는 요가 중

어느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한다. 간단한 소개를 지나 나의 전공까지 말하다 보면, "클래식 피아노 전공이시니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셨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과연 고급스러운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고급스러운 사람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격이 있는 취미를 가진 것일까, 취향이 세련되고 안목이 높은 것일까, 아니면 나의 생활환경이 고가로 이루어진 것일까, 어쩌면 정신적으로 성숙해 타인에게도 품격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고급스러움일 수도 있다. 좀 더 나아가 불필요한 자극을 선택적으로 쳐낸 고고함이야말로 정서적인 고급스러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산이 많아 고가의 물건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안목이나 내면의 여유가 없다면 과시라고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마음이 넓고 안목이 뛰어나더라도 기본적인 환경이나 생계유지가 어려우면 삶의 질이 떨어져 고급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정된 기반 위에서 스스로 취향을 결정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여유를 확보한 것이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데, 내가 정말 그런 고급스러운 사람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고급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클래식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체화한 일상일 뿐이다. 익숙한 연습실 피아노의 나무 냄새로부터 시작해, 매일 반복되는 연습이라는 고된 노동, 그리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무대까지. 내 안에서 보면 음악은 아름다운 예술이기도 하지만 체력이 필요한 훈련에 더 가깝다.


하지만 외부 슬롯가 클래식 음악을 고급으로 규정하는 구조적 원인은 분명하다. 레슨, 유학비용을 비롯해 악기 관련 비용과 같이 초기 투입 자본이 커 진입장벽이 있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악보라는 복잡한 기호를 해석하고 신체 테크닉으로 구사하는 전문성은 단기간에 배울 수 없는 희소한 자산이기도 하다. 또한 연주회장의 예절과 갖춰 입은 드레스 같은 것들이 비일상적 격식으로 다가와 이 모든 것을 고급스러움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당연했던 음악적인 환경은 나에게 특별함이나 고급스러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 졸업 후 불확실한 진로, 매일 이어지는 자기 검열과 피로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체화한 아비투스(Habitus) 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선택해서 누리는 문화적 취향이 나에게는 수년간 몸으로 익혀온 기술이자 전공이기 때문이다.


사실 상대의 "고급스러운 취향"이라는 말에 굳이 클래식의 당위성을 설명하거나 반대로 과하게 부정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말은 일종의 칭찬이자 분위기를 풀기 위한 멘트 정도일 테니. 그에 대한 대답으로 "어릴 때부터 매일 연습하다 보니 저에게는 생활이나 운동에 가까워요."라고 대답한다. 타인이 바라보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내 일상의 담백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나온 대답이다.


상대방의 인사치레의 말을 계기로, "진짜 고급스러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면의 의문이 고개를 들어 내 삶을 돌아본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할지 몰라도 정말 나의 안목이나 삶, 마음가짐 역시 그러한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결국 고급스러운 삶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타인이 만든 브랜드나 기준에 맞출 게 아니라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기준을 스스로 선택하고 유지하는 것. 오히려 많이 가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지 않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내면의 여유를 갖는 것. 어쩌면 그런 주체성이야말로 가장 고급스러운 삶의 형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