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숫자로 세상을 다루는 남자의 낭만
'제3의 눈'이라는 생소하고도 오만한 단어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온 뒤, 거실의 공기는 한동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32분 33초의 보이스톡이 끊기고 액정이 꺼진 뒤에도 그의 낮고 선명한 음성이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숫자의 파도와 이면의 질서로 세상을 읽는다는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남자가, 15년의 시간을 단숨에 건너 내 삶의 궤도 안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이었다.
나는 식어 버린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노트북 속 카톡 대화창을 내려다보았다. 노란 말풍선에 정갈하게 찍힌 그의 문장들 사이로,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의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미대생이었다. 그러나 오래 예술가이기를 고집하지는 못했다. 2학년 2학기 무렵, '작가'라는 길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접었다. 재능이 없다고 단정할 만큼 용감하지도, 있다고 믿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도 못했다. 졸업 후의 막막한 생계 앞에서 예술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나는 가장 빠르게 슬롯로 건너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작업실은 어느새 작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졸업에 필요한 절차를 치르는 곳이 되었다. 환경조각 전공이면서도 석조, 목조, 철조 수업은 단 한 학기도 신청하지 않았다. 돌과 나무와 쇠는 한 번 쓰면 사라지는 재료였고, 그 재료비는 한 학기 용돈을 훌쩍 넘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재료는 흙뿐이었다. 마르기 전의 흙은 물을 먹여 다시 반죽하면 몇 번이고 되살릴 수 있었다. 졸업 작품을 테라코타로 정한 것도 그래서였다. 가마는 학교 것을 썼고, 재료는 가장 싼 것이었다. 신념도 미학도 아닌, 통장 잔고가 고른 재료였다.
그래도 과제 마감으로 새벽까지 작업실에 남는 밤이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석고 가루와 진흙 먼지가 가시지 않은 공기 속에서 흙을 주무르다 보면 손끝이 먼저 기억을 되찾았다. 아, 이게 내가 정말 좋아하던 감촉이었구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텅 빈 작업실에서 나는 마지막 소풍을 나온 사람처럼 느리게 흙을 만졌다. 가난이 고른 재료였는데, 손은 어느새 그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문을 닫고 나가면 더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학교를 떠나는 순간 '예술가'라는 이름도 함께 반납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밤들은 달콤했고, 동시에 조용히 아팠다.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며 내 시간표에서 전공 선택은 자취를 감췄다. 재료비가 드는 수업을 피하고 나니 빈자리가 생겼고, 나는 그 자리를 자연과학개론, 교육학개론, 슬롯학개론, 음악의 이해, 동양철학의 이해, 세계문화의 사적 이해, 도시학개론, 북한 정치와 경제, 인간과 환경, 건축의 이해, 미학개론으로 채웠다. 교양은 재료비가 들지 않았다. 동기들은 "넌 무슨 종합대학 교양 투어 하냐"며 웃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작업실에서 놓아 버린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채우고 싶었다. 만들 수 없게 된 대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 시간표는 도망의 흔적이면서, 내가 나를 위해 짠 가장 솔직한 지도였다.
그 시절 미대 건물 앞 붉은 벽돌 계단에는 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꺾어진 가로수처럼 어색하게 서성이던 복학생 오빠였다. 무채색 셔츠 차림에 전공 서적이나 노트북을 든 채 덤덤한 눈빛으로 미대 건물 쪽을 바라보던 사람. 눈이 마주치면 먼저 시선을 돌리는 쪽은 언제나 그였다. 알고 보니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한 학기를 더 쉬었다가, 나와 같은 2학년으로 복학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네 살 위, 학번은 한참 빨랐지만 학년은 같았고, 그래서 교양 강의실에서는 번번이 같은 공기를 마셨다. 동아리 선배들은 그를 두고 소문을 전해 주곤 했다.
"채영아, 교양 수업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그 복학생 오빠 있지? 너한테 관심 있어서 따라다니는 거래. 아마 환경공학과였나? 너보다 네 살쯤 위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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