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의 정원

3화 | 5시간 30분, 그리고 100일의 시작

by유진

5월 1일, 호수공원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고 맑았다. 5월의 초입이 건네는 신선한 바람과 비스듬히 내리쬐는 봄 햇살이 수면 위를 은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15년 전 미대 건물 앞을 서성이던 컴공과 복학생 선배와 스물세 살의 미대생이 드디어 실제로 마주하는 날이었다. 약속 시간인 오전 11시 50분이 가까워질수록 동탄 레이크벨라 빌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경쾌해졌고, 마음은 몽글몽글 설렜다. 원래 계획은 호수공원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날 밤, 서진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커피는 너무 짧아. 점심 먹자."


그가 고른 곳은 예약을 받지 않는 규카츠맛집이었고, 줄이 길어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약속 시간을 11시 50분으로 당겼다. 2층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길게 늘어선 대기 줄 끝에서 마침내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고 날렵하게 떨어지는 차림새, 길고 깊은 갈색 눈빛, 살짝 오만한 분위기까지 그대로였다. 세월이 그만 비껴간 듯, 15년 전 그 컴공과 선배의 윤곽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랜만이네, 강채영."


수화기 너머로 듣던 나직한 중저음이 공기를 타고 실물로 다가왔다. 예약을 받지 않는 집이라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서진이 줄을 흘끗 보더니 말했다.


"기다릴 거면 얘기하는 시간이 아깝지. 다른 데 가자."


우리는 긴 대기 줄을 뒤로하고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스파게티를 나눠 먹으며, 15년의 공백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를 실내 카페 대신 '현자의 정원'으로 안내했다. 산바카라길마다 잠시 멈춰 호수를 바라보던 곳이었다. 넓은 계단식 구조물 위로, 몸을 뒤로 깊숙이 눕혀 호수를 향해 기댈 수 있는 철제 안락의자들이 펼쳐진 아늑한 쉼터였다.


"여기 누워서 보면 호수가 제일 예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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