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었다.
준호는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나무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준호는 여전히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자신을 딱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과연 누구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지.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그 결혼 생활이 행복한지.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누구와 결혼하는 것이 나았는지. 그 미래를 참고하고 싶었다. 해답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조금의 힌트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준호는 멈췄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한때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준호는 자신에게 물었다. 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솔직한 감정을 말하기에 앞서 언제나 제동이 걸렸다. 좋은 이별을 하고 싶은 것인지.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모두 포장이고 실제로는 다음 소개팅의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본성의 가면을 숨기는 것인지.
솔직해지려 할수록 더 알 수 없었다. 선한 마음과 계산이 뒤엉켜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별이 안 됐다. 어쩌면 둘 다 진짜였다. 그것이 더 불편했다.
기준이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그 기준이 잘못 설정되었기에 이렇게 헤매는 것일까. 준호는 생각했다. 그 기준을 만들어 준 것이 무엇인지를. 첫사랑이었다. 오래전에 끝난 그 감정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 기준에 못 미치면 아쉽고, 그 기준을 넘어서면 두려웠다. 첫사랑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못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태어난 환경이 만들어 낸 결핍이 가져다 준 결과인가. 부모님이 그랬듯.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삶이 틀어진 것인가. 부모님이 만든 둥지가 어긋났기에 제대로 된 둥지를 만들겠다는 다짐 자체가 틀린 것인가.
부모님도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둥지를 꿈꿨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꿈이 조용히 무너졌을 것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반드시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준호는 둥지를 만들려는 의지마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다짐이 의지를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 두려움이 의지를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신중한 것일까.
준호는 그 둘 사이에서 오래 서 있었다. 인연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에 무엇 하나 놓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무엇이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 앎이 과연 맞는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
혹시나 이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면. 아니, 애초에 자신이 만든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면. 해보지도 않은 것에 선입관을 가진 것이라면. 그랬기에 결정을 미루는 것이었다.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마음을 속이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사랑을 향한 신중함인지, 준호는 몰랐다.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갔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누군가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준호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타임머신은 없었다. 미래를 볼 수 없었다. 힌트도 없었다.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했다. 불완전한 정보로. 불완전한 마음으로.
그런데 준호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솔직한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