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는 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지호는 그것을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느끼는 그 서늘한 거리감을 상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이 차가운 것이라고, 저 사람이 어려운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거리였다. 서로의 이야기가 아직 서로에게 닿지 않아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공백이었다. 공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었다.
윤서를 처음 만난 것은 가을이었다. 공통된 지인의 모임이었고, 열 명 남짓 모인 자리에서 윤서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말이 많지 않았고, 웃기는 했지만 먼저 웃지는 않았으며, 누군가 말을 걸면 대답하고 대답이 끝나면 다시 조용해졌다. 지호는 그 사람을 어렵다고 생각했다. 가까이하기 불편한 사람이라고. 그날 둘이 나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여기 자주 오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그게 전부였고, 지호는 그 대화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미 잊었다.
두 번째 만남은 우연이었다. 서점의 에세이 코너를 둘러보던 지호는 낯익은 뒷모습을 보았다. 윤서였고, 지호가 사려던 바로 그 바카라을 들고 있었다. 지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그 바카라 재밌어요?"
윤서가 돌아보았다.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직 몰라요. 첫 페이지만 읽었는데 계속 읽고 싶어졌어요."
짧은 대답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다 읽지 않아도 계속 읽고 싶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지호는 같은 바카라을 한 권 더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윤서가 말했다.
"다 읽으면 어떤지 알려주세요."
연락처를 교환했다. 자연스럽게.
그 후로 가끔 문자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바카라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카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바카라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로 갔다가, 어린 시절에서 지금의 삶으로 갔다가, 지금의 삶에서 앞으로 원하는 것으로 갔다. 문자가 길어졌고 답장이 빨라졌다. 지호는 어느 날 문득 윤서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한 순간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윤서는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 말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늘 두려웠다고, 친해지면 떠나야 했으니까. 지호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조용했던 것이었구나.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가갔다가 먼저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낯섦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가 닿지 않아서였고, 이야기가 닿자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처음으로 단둘이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바카라 이야기와 어린 시절 이야기와 좋아하는 계절 이야기를 했다. 윤서는 가을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유가 재미있었다. 나뭇잎이 지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가을에는 사람들이 조금 더 천천히 걷는 것 같아서라고. 지호는 웃었고, 이 사람은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헤어질 때 윤서가 "또 봐요" 하고 말했고,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또 보고 싶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아무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호의 하루에 윤서가 들어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윤서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었고, 길을 걷다가 윤서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보면 사진을 찍었다. 윤서의 이야기를 들을 때 지호는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려다 멈추었다. 이 사람의 방식으로, 이 사람의 자리에서 보아야 한다고.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는데, 윤서 앞에서는 그 습관을 내려놓고 싶었다. 번역하지 않고 윤서의 말을 윤서의 말 그대로 듣고 싶었다. 그것이 사랑인지는 몰랐다. 다만 지호의 삶의 중심이 자신으로부터 윤서 쪽으로 조금씩 옮겨 가고 있었다. 기꺼이.
어느 저녁 윤서가 물었다.
"지호 씨는 사랑이 뭔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고 지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시간을 함께 엮어 가고 싶은 마음 같은 거요. 내 시간이랑 그 사람의 시간이 따로따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만나고 겹치고 그렇게."
윤서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같은 곳을 향해 있다는 것."
지호는 윤서의 옆얼굴을 보았다. 가을 저녁 빛이 그 얼굴에 닿아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다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쉼 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을 정말 아는가. 이 사람의 두려움을, 이 사람의 침묵을, 이 사람이 천천히 걷는 이유를. 지호는 그 질문들 앞에서 오래 머물렀고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그 모호함이 싫지 않았다.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윤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으니까. 어쩌면 사랑이란 그것이 전부인지도 몰랐다. 끝없이 질문하고, 끝없이 들여다보고, 끝없이 다가가는 것.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엮이는 것.
봄이 왔다. 지호는 윤서와 나란히 천천히 걸었다. 가을에 윤서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봄에도 천천히 걷는다는 것을 지호는 그날 알았다. 따뜻해지면 서두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기억해요. 제가 어렵게 느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둘은 잠시 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가을이, 이야기가 닿지 않아 생겼던 그 거리가 지금은 웃음이 되어 있었다. 낯섦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야기가 닿기 전의, 잠시 동안의 공백이었다. 지호는 그것을 이제 알았다. 너무 늦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