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식탁에서 묻는다.
일주일 남짓 머문 숙소였지만, 일본인 엄마와 동갑내기 친구는 떠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따뜻한 식탁을 내어주었다. 새콤한 매실장아찌(우메보시)를 쫑쫑 썰어 넣은 볶음밥과 달걀을 듬뿍 푼 따뜻한 국수.
매일 아침 나의 하루를 시작해 주던 단골 카페 사장님도 내가 오늘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며 한국에 잘 돌아가라고, 다음에 꼭 다시 오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덧붙였다. 매일 반복되던 우리의 짧은 수다와 쾌활한 웃음소리가 오늘로 끝난다는 사실이, 그녀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술 끝에서 문득 실감 났다.
충분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음에도 발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을 머문 동네인데도, 마치 오랜 친정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이주라도 하는 사람처럼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고 쓸쓸했다.
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치앙마이와의 진짜 이별 의식을 치르기 위해 나이트 바자로 향했다. 셀 수 없이 발걸음을 찍으며 정이 든 그곳에서, 나는 주저 없이 가장 아끼는 팟타이 한 접시를 마지막 만찬으로 골랐다.
주문한 팟타이는 은빛 스테인리스 접시 위, 얇은 포장지를 깔고 그 위에 듬뿍 담겨 나왔다. 뜨거운 윅에서 방금 볶아져 나온 얇은 쌀국수 면은 짙은 갈색 소스를 머금어 눅진한 윤기가 돌았다. 부드럽고 엉킨 달걀과 끄트머리에 무심하게 툭 얹어진 연두색 라임 한 조각. 젓가락 끝으로 라임을 꾹 짜내자,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타고 시큼하면서도 달착지근한 피시소스의 향이 훅 끼쳐왔다.
수많은 여행자의 온기가 스며들어 반들거리는 나무 테이블. 그 위 밴 진득한 기름기 탓에 팔뚝이 끈적하게 달라붙었지만, 왠지 모를 그 낡은 촉감마저 떠나는 날 밤에는 여행의 다정한 일부처럼 느껴졌다.
젓가락으로 아삭한 부추와 숙주, 그리고 면을 크게 집어삼켰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이 퍼질 때마다, 한 달간 치앙마이에서 겪었던 짭짤하고도 달콤한 시간이 함께 씹히는 듯했다. 등 뒤로 들려오는 경쾌한 윅 부딪히는 소리와 낯선 이들의 웃음소리. 이 소란한 활기가 내 곁에 영원했으면 싶었지만, 눈앞에서 비워져 가는 접시처럼 나의 길었던 여행도 기어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빈 접시를 뒤로하고 일어나는 순간, 비로소 '치앙마이 여행자'라는 달콤한 허물을 벗어 던져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북적이는 야시장의 소음과 한 달 내내 나를 감싸주던 다정한 온기들을 그곳에 두고 오려니, 치앙마이에 처음 도착할 때만 해도 깃털처럼 가벼웠던 캐리어가 유독 묵직하게 발목을 끌어당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치앙마이의 밤이 멀어졌다. 돌아갈 채비를 마친 내 짐가방 속에는 미처 다 비워내지 못한 아쉬움과, 돌아가 다시 살아낼 일상의 온기가 뒤섞여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무게를 안고 일상의 문 앞에 섰을 때, 과연 이 온기는 내 팍팍한 삶을 얼마나 데워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다만 이 무거운 온기를 품고
조용히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