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격표를 만들었다

내 값을 모르는 사람이 값을 정해야 했다.

by산에태양

홈페이지를 세 번 고치는 동안, 끝내 고치지 못한 칸이 하나 있었다.

가격이었다.

나는 상품의 가격을 정하던 사람이다. 원가를 보고, 경쟁 상품을 보고, 소비자가 받아들일 선을 가늠했다. 외주 견적서를 받아 비용을 조정했고, 컨설팅을 맡길 때도 그 일에 얼마를 지불할지 판단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의 가격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처음에는 연봉에서 시작했다.

연봉을 일수로 나누면 하루 단가가 나온다. 계산은 금방 끝났다. 오래 고민하던 것치고는 답이 너무 쉽게 나왔다.

그런데 그 숫자를 가격표에 옮기려니 손이 멈췄다.

그건 회사가 나를 한 해 동안 그 자리에 두는 값이었다. 앞으로 고객이 맡길 일의 값과 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일을 할 때도 비슷했다.

일주일 만에 문제와 해결 방향이 보였는데, 너무 빨리 끝내면 내가 한 일의 값이 작아 보일까 봐 바로 보고하지 못했다. 검증과 설득에 필요한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시간으로 값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가격표를 만들면서 다시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연봉을 하루 단가로 바꾸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빼고 결과에 가격을 붙이면 될까.

문제를 진단하는 데 얼마. 해결 방향을 정리하는 데 얼마. 실행까지 맡는 데 얼마.

말로는 정리할 수 있었다.

막상 숫자를 넣으려니 다시 막혔다. 같은 진단이라도 회사마다 문제가 다르고, 내가 맡아야 할 범위도 달랐다. 보고서 한 장으로 끝날 수도 있고, 조직과 시스템을 함께 바꿔야 할 수도 있었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내가 풀어낸 문제가 빠졌다. 결과로 계산하려니 어디까지 바카라임질 것인지부터 정해야 했다.

가격 칸 하나를 채우려고 시작한 일이 내가 무엇을 팔려는지 다시 묻는 일이 되었다.


참고할 숫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유명 컨설팅펌에 일을 맡겨본 사람이다. 발주하는 쪽에서 견적서를 받았고, 그들의 가격이 어느 선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그 견적에는 회사 이름과 팀, 지난 프로젝트의 실적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일을 맡긴 뒤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조직도 있었다.

내 가격표에는 내 이름이 들어갔다.

회사에 있을 때 쌓은 경험은 있었다. 다만 그 경험을 믿고 내게 직접 일을 맡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첫 번째 일에서도 금액은 상대가 먼저 말했다.

나는 그 금액을 받아들였다. 내 쪽에서 먼저 가격을 말하고, 상대의 답을 기다려본 적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조금씩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 일을 얼마에 맡기겠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무료로 시작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일단 해보고,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 그다음에 돈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이미 계약 없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겪은 사람이었다. 일을 한 뒤에 그 일의 범위와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작하기 전에 적어두고 싶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까지 맡을 것인지. 얼마를 받을 것인지.

금액이 크든 작든, 그 칸을 비워둔 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말할 자신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필요한 일이어도, 상대에게는 아직 맡겨본 적 없는 사람이 하는 제안이었다. 그 망설임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50%였다.

처음 내놓을 가격을 정하고, 창업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절반을 받기로 했다.

가격을 정하는 숙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기준으로 삼은 금액에 확신이 없으니, 그 절반에도 확신이 있을 수 없었다.

다만 더는 가격 칸을 비워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창업 이벤트라고 부르면 설명하기는 쉬웠다.

시작하는 사람이 처음 일을 맡겨주는 고객에게 가격을 낮춰주는 것.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하고 나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았다.

상대가 비싸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아직 가격표를 본 사람도 없었다.

시장이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값을 반으로 내린 것일 수도 있었다.

일을 맡기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거절당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두 마음이 함께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컸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상품의 가격을 정할 때는 이보다 덜 망설였다. 팔리지 않으면 원인을 찾고, 가격을 바꾸거나 구성을 바꾸면 됐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될 텐데, 내 일에는 그 거리를 두기가 어려웠다.

가격이 높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내가 과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 같을까 봐 걱정했다. 낮은 가격에도 맡기지 않으면 그때는 무엇을 고쳐야 할지 몰랐다.

숫자를 적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50%가 맞는 선택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 가격으로 일을 맡아본 뒤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약속한 범위 안에서 일을 끝낼 수 있는지, 상대에게 필요한 도움이 되었는지, 그 금액을 받고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는지.

그때 다시 고쳐야 할 수도 있다.

홈페이지를 세 번 고쳤듯이 가격표도 여러 번 고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숫자를 적었다.

그 숫자를 적고 나서도 내가 얼마짜리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첫 가격표가 생겼다.

가격표는 만들었다.

이제 이 숫자를 보여 줄 사람이 필요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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