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지 못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가격표를 만들고 며칠 뒤, 아는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창업을 해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벤처회사 대표다. 오랜만에 밥을 먹으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한참 오간 뒤, 후배가 물었다.
"형님은 자영업자세요, 창업자세요?"
숨이 막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창업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고, 그렇게 시작했다. 27년을 일했고, 법인 대신 이름부터 걸었고, 홈페이지를 세 번 갈아엎었고,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가격표를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을 나는 창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형태로 물어 오니, 내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자영업자이기도 하면서 창업자라고 말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뒤로 대화가 겉돌았다는 것,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내내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답을 찾아보았다. 내가 멈추면 매출이 멈추는가. 그렇다. 지금은 내 시간이 곧 상품이다. 이미 검증된 모델을 하고 있는가, 모델을 찾는 중인가. 찾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찾는 중인지 그냥 버티는 중인지 나도 구분하지 못했다. 기준을 하나씩 대 볼 때마다 어느 쪽도 아닌 답이 나왔다.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쓰려다가 지웠다. 자신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떨어진 것은 방향성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자영업자가 창업자보다 낮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 자리에서 20년 가게를 지켜 온 사람의 일은 내가 해 본 어떤 프로젝트보다 단단하다. 이 질문이 아팠던 것은 위아래 때문이 아니었다.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창업이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투자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하지만 창업이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 한 조각은 그 단어 뒤에 따라오는 것들에 있었다. 투자, 확장, 누군가 내 가설에 돈을 걸어 주는 장면. 후배의 질문은 그 단어 뒤에 숨겨 둔 기대를 정확히 건드렸다.
그러고 나서 33화의 가격표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내 값을 모른다는 이유로 정가의 절반을 덜어 중저가로 내놓았다. 시장이 고개를 끄덕여 주기를 기다리는 구조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자영업자의 방식에 가깝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투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투자는 가격이 아니라 가설에 돈을 거는 일이다. 값을 반으로 내려놓고, 가설에는 큰 돈이 걸리기를 바라고 있었던 셈이다.
가격표 앞에서 모르겠던 것과 후배 앞에서 모르겠던 것은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이 시장에서 무엇인가.
그래서 이 질문의 답은 단어 정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는가에 있다. 안정된 수입과 내 이름으로 일하는 자율성을 바라는 것인지,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인지. 둘 다 정당한 바람이다. 다만 둘은 매일 하는 일이 다르다. 나는 둘을 한 단어에 같이 넣어 두고 있었다.
아직 답은 없다. 질문만 생겼다.
자영업자인지 창업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가격표를 누구에게 먼저 보여 줄지는 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