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크릴 팔레트

고3 미술실기, 아빠와 아크릴 팔레트

by디자이너민CHU


1989년 겨울.

대학입시 전기 전형에서 나는 낙방했다. 열아홉 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실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인생이 장밋빛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고, 준비한 만큼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당시 미술대학 입시는 치열했다. 내가 지원했던 대학의 경쟁률은 24대 1에 가까웠다.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한 나는 한동안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자식들의 교육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도 놀라셨는지 집안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잠시 후 아빠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그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필기와 실기를 같이 준비해야 하니까 학원에 다니는 시간을 줄이자. 네 학원 선생님들이 한 달 동안 집으로 오시도록 하마.”


나는 그때까지 실패했다는 사실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이미 나를 위해 다음을 준비하고 계셨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집에서 실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젤을 방에 설치하고, 구성과 소묘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들이 집으로 오셨다.


나는 집에서 하루에 한 작품씩 완성하면서 필기 공부도 병행했다. 아빠는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다시 하면 돼. 그리고 또 노력하면 돼. 너는 할 수 있어.”


그때 아빠의 손은 참 컸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다시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어느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나서 사용했던 아크릴 팔레트와 붓을 정리하려고 했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만든 흰색 아크릴 팔레트를 사용했는데, 하루 동안 사용하고 나면 팔레트에는 물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붓도 여러 개를 사용했다. 그날도 팔레트를 씻으려고 화장실 세면대로 가져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크릴 팔레트가 깨끗하게 씻겨 있었다. 내가 사용했던 붓들도 하나같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 누가 씻었지?’


처음에는 누군가 장난을 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랬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빠였다.

아빠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잠든 뒤, 내가 사용한 팔레트와 붓을 화장실 세면대에서 하나하나 씻어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아크릴 팔레트를 얼굴 가까이 들고 한참을 울었다.


입시 때문에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를 위해 묵묵히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던 아빠가 너무 고마워서였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사랑은 꼭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빠는 “힘내라”라고 수십 번 말하는 대신, 내가 잠든 밤에 더러운 팔레트를 씻어주셨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다음 날 아침 깨끗한 팔레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작은 행동이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응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아빠는 자식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셨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우리 삼 남매의 선생님들과도 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빠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셨다.

본인이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만큼, 자식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셨다. 그리고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해서 똑똑한 사람보다, 교양이 많은 사람이 지혜롭게 사는 거야.”


그 말씀은 어린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디자인이라는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프로젝트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선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빠가 말한 ‘교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후기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지나 미국 대학원까지 갈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는 늘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 특히 아빠는 내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고민했고, 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디자인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아빠에게서 실패를 견디는 법, 다시 시작하는 법,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저녁, 미국 캘리포니아 더블린의 집에서 아빠에게 FaceTime을 걸어야겠다.

아마 아빠는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로 물으실 것이다.


“뭐 하고 있어, 밥은 먹었고? 운동은?”


나는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네, 아빠. 오늘 운동했고, 저녁은 아직이에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빠, 그때 내 아크릴 팔레트 씻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직도 아빠에게 매일 배우고 있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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