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홈페이지를 누가 보고 있냐고요

by까꿍

왜 항상 중요한 일은 금요일에 모두 이루어지는 걸까?


건물주가 되는 날, 도장 찍으러 가야 하는데 회사가 너무 바빠 전날 10시까지 야근하고 쪽잠 자고 일어나 도장을 찍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사가 한창 바쁜 시즌이라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팀장님께 가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여러 번 덧칠하며 정말 중요한 날이고, 꼭 가야 하고, 이런 바쁜 날 빠지게 되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팀장님은 아쉬움의 쩝 소리를 내며 알겠다고 하셨다.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생에 첫 공청회, 내 생에 첫 재개발 의견수렴날, 건물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역시 전문가의 눈은 다르군 자축하며 남편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동사무소에 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이미 만석이었다. 수많은 사람 중 내 또래는 단 두 명이었다. 대부분은 머리를 뽀글하게 파마한 할머니 또는 머리가 새하얀 노년기 남성이었다. 뭔가 특이점이 왔지만 생에 첫 공청회에 참석했다는 데 의의를 뒀다. 간이 의자를 펴고 저 앞에 앉았다. 물어볼 게 많았다. 내 재산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잘 들어야 했다. 암요 암요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재개발 이런 얘기는 안 나오고, 건물, 용적률 이런 얘기만 주야장천 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것은, 이 공청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차도 내고 왕복 3시간을 내리 달려왔는데, 발표는 10분 만에 끝나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동사무소 마이크는 얼마나 재활용을 많이 한 건지 웅웅 거리고 힘이 없어 차라리 생목으로 발표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표 다 끝났다면서 화면에 ‘감사합니다’를 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엥? 뭐가 감사하지?


발표를 맡은 높은 직급자는 얼른 치고 빠지고 싶어 했다. 예상시간이 20분이었는데 10분 만에 모든 발표를 끝냈으니 말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어떤 할아버지가 ‘대체 이게 뭐요?’라고 첫 질문을 뗌과 동시에 동시 다발적으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공청회요?”

“오늘은 토지 용적률에 관한 공청회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무슨 공청회인지 정확히 써서 편지를 보냈어야지”

“저희 이미 다 홈페이지에 공고해 놨는데요”

“아니,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매일 홈페이지만 쳐다보고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이럴 거면 문서라도 제대로 좀 만들던가”

“아직 확정 사항이 아니라서 이렇게 표현하게 된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이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팀장님은 기분이 팍 상한 듯했다. 어쩐지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구나. 분명 챗gpt가 공청회 제목 보고 이건 ‘재개발’과 관련된 게 아니라고 했는데 왜 난 그 말을 무시한 걸까. 연차 쓰고 여기까지 온 내 시간이 아까워지던 참에 어떤 분이 자리에 앉아서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 불러다 놓고 이게 뭐요”

“저희는 홈페이지 게시하고, 주민 대상으로 공청회 해야 돼서 안내드린 것뿐입니다


방어적인 팀장님의 태도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분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후 연이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은 관련이 있었고, 어떤 질문은 관련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본인 얘기만 하기 시작하자 “이제 손을 들고 질문해 주세요”라고 팀장님이 교통정리를 했지만, 교통정리는 무색했다.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참석자들이 이미 회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GPT에게 재개발 공청회 진짜 아니야?’라고 물었다


“네, 오늘 공청회는 재개발과 관련된 공청회가 아닙니다”


그래, 제대로 안 보고 속 뜻까지 파악하고 홈페이지 공고문까지 뒤져봐야 했던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는가. 공무원은 칼이었다. 인정이란 없었고 원칙만 존재했다. 뜨뜻미지근한 답변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봤고 손들기 경쟁에서 겨우 이겨, 다섯 번째 질문자격을 획득했다.


“재개발 관련된 사항이나, 진행사항이 혹시 있을까요? “


분명 허를 찌르는 질문이라고 챗이 그랬는데 현실에선 달랐다. 팀장님은 반 코웃음을 쳤고, 공식 자료가 없고, 주민의견 모아 신청하라고 하며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휴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질문을 하는 낯선 나에 놀랐다. 회사에서의 나는 마치 땅 속 두더지처럼,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은 하지 않는데, 이번 건은 달랐다. 내 재산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발표 10분은 턱없이 부족했다.


예상 안은 발표 20분, 논의 30분이었는데, 결국 발표 10분, 논의 50분으로 긴 시간 끝에 겨우 공청회가 끝이 났다.

잘못 왔다며 혀를 끌끌 차는 소유주들 옆에서, 어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 패피‘ 할아버지가 일어나더니 한 마디 하셨다.


“여러분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보세요, 할 말이 있어요. 앉아 있어요”


라고 했는데 그 누구도 그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남아있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한마디는 허공에 사라졌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