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보러 갔다가 동물원을 떠올렸다

이렇게 ‘건물주’가 되는 것인가

by까꿍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회사생활에 하루의 절반을, 또 남은 하루의 절반은 육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커갔고, 본업에도 충실하고 싶었기에 엄마 3, 회사원 7인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남편이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야 좋았다, 남편은 빈틈없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남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왔다. 문제는 내가 남편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우리는 분업화가 꽤나 잘 되어 있었는데, 괜찮은 매물을 남편이 알려주면 내가 흥정을 하고, 남편이 디테일한 항목들을 수정하는 그런 룰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구 하나 ‘이거 하세요 ‘라고 정해주지 않았지만 각자의 특기에 맞춰 역할이 정해졌고 난 이런 삶에 꽤나 익숙해진 터였다.


그러다 우리도 육아에 절어 대화가 단절될 때쯤, 남편이 갑자기 하나의 링크를 보내왔다.

어? 건물이다, 그런데 싸다. 꽤나 싸다.

“건물이 왜 이렇게 싸?”

“싼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아마 실제로 보면 이유가 있을 거야”


앞뒤 안 가리고 바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네, 그 ㅇㅇ건물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혹시 볼 수 있을까요?”

“아, 그거 나온 지 꽤 돼서 지금 매수 대기자가 있어요. 지금 문의가 너무 많아요. 혹시 거래 파기되면 연락드릴게요”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함) 네? 아 정말요? 알겠습니다, 꼭 연락 주세요 “

행운이 내게 올까? 과연? 아직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말 한마디에 희망을 걸고 내 조건에 대해 문자를 꾹꾹 눌러썼다. 이 행운이 내게 올 수 있기를 제발 올 수 있기를…


2주가 흘렀다.

가족여행을 가던 일요일 차 안,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던 날이었다. 긴 이동시간에 애들은 짜증을 낼 때까지 다 냈고, 나는 애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은 차 안에서 3시간째 가는 길이었으니 작은 차 안에 온갖 짜증이 꽉 찼다. 또 햇빛은 왜 이리 센 건지, 햇빛 때문인지 짜증 때문인지 연신 미간이 찌푸려졌다. 애들을 달랬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간지럼을 폈다가, 바카라을 읽어줬다가, 이야기를 했다가, 노래를 불렀다가 성대 결절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사이 싼 건물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봐도 그만한 가격이 없었지만, 행운이란 녀석은 종종 나를 비껴갔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잊는 게 최선이었다. 좋은 매물을 늦게 발견한 내 탓이지 어쩌겠는가, 내 팔자가 여기까지인 것을.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잉지잉 어, 못 보던 번호다. 어디지?


“여보세요?”

“여기 부동산인데요, 저번에 건물 문의하신 거”

“네? ㅇㅇ동네 거기요? “

“네, 지금 거래가 파기돼서 연락드리거든요. 언제 한번 보시겠어요?”

“네! 내일 갈게요”


2박 3일의 여행이었는데 남편과 상의도 안 하고 1박 2일로 갑자기 당겨버렸다.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런 행운이 내게 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니 그때 가자고 했다. 짜증스러운 햇살이 갑자기 은총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햇볕이 따뜻할 수가 있구나, 천사의 날개가 갑자기 나를 향하는 듯했다. 애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 가족은 단 한 번의 샤우팅과 짜증 없이 행복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 남편에게 건물에 대해 파악한 사항 위주로 브리핑하며 부동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부동산 조금 다르다,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일했단다. 20년이면 내가 처음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다. 초짜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에 대한 정보 제공은 최소한으로 하되,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빼내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말없고 진중한 모드로 전환한다, 스위치 온!


소장님이 앞장서서 건물을 삥 한 바퀴 돌았다. 작은 건물은 회색 대리석으로 둘러쳐진 그런 길 가다 많이 보이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건물 1층에는 빛바랜 시트지로 범벅이 된 배달 음식점이 입점해 있었다.


“워낙 사장님이 여기 계신 지 오래되어서요, 집주인보다 이 분이 건물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세요. 이분께 한 번 설명 들어보세요”


웍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1층 음식점 주인아저씨가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예요? 그때 그 사람이 아니네? “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음식점 + 주인이 음식 만들면서 흡연 =??


주인이 재빨리 담배 한 대를 땅에 버리며 짓이기며 껐다. 나는 인사를 했고, 그분도 인사를 하며 우리 넷은 건물을 한 바퀴 휙 돌았다.

생각하던 것보다 많이 낡았고 많이 더러웠다.


“똥통이 문제예요, 똥통이”

정화조를 손가락을 가리키며 문제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똥통이 문제란다, 똥. 통. 밑줄 쫙.

위층은 사람이 살고 있어 볼 수가 없고 1층과 지하만 보기로 했기에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가 물이 얼마나 넘치는지 몰라요, 아주 콸콸 넘친다니까요. 이 펌프 보이죠? 이 펌프로 내가 물 퍼다가 지하 관리했어요”


실제 물이 많이 흘렀는지 지하로 내려가자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곳에서 새빨간 펌프가 보였다. 건물을 관리하는 대신 여기에서 먹고 자고 한단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생활 흔적이 느껴졌다. 한여름에 호랑이 이불이라니, 꽤나 특이한 분이네. 속으로 생각하며 한 바퀴 둘러보는데 갑자기 하얀 물체가 보였다.


“어, 저게 뭐예요?”

“아, 제가 쓰는 변기요”


변기에 가까이 가는 순간 아까 먹은 음식물이 갑자기 역류하는 게 느껴졌다. 거긴 동물원이었다. 그것도 관리가 아예 되지 않은 날것 그 자체였다. 후각적인 폭력과 시각적인 폭력이 실시간으로 나를 뚜드려 패고 있었다. 오감이 내게 속사였다, 돈이 문제냐고 얼른 도망가라고. 너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숨을 참으며 힘겹게 음식점 주인에게 말했다.


“이렇게 상세하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나가도 될 것 같네요 “


바깥을 나오자 뜨거운 공기가 날 휘감았다. 내가 저런 변기를 언제 봤던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20대 때 술집에서 봤던 변기인가, 아니면 임신 중반기 종로 3가 상가 화장실에서 봤던 변기인가, 그 변기는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봤던 변기 중 가장 더러웠다.


그 건물은 꽤나 작았다. 금방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보고 싶지가 않았다. 돈도 좋지만 내 비위도 중요했다.


그렇게 우리의 건물 브리핑은 끝이 났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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