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화요일 밤

새벽 2시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그녀석이 찾아왔다. 분명 한동안 하고싶은 일에 불타올랐었는데, 백수의 삶은 다시 느슨해졌다.

그렇다.

내 평생의 적, 작심삼일.


발바닥에 불이난 듯 달리던 것도 잠시, 새벽 5시의 청량함 대신 새벽 2시의 고요함에 다시 이끌리고 있다. 다시 예전 습관처럼 새벽 두 세시쯤 잠이 들어서, 일고여덟 시간의 평균 수면 시간을 채우고서야 느긋하게 잠에서 깨는 삶으로 되돌아갔다.


새벽 5시에 일어나겠다고 벼르던 다짐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5시 기상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옛사랑 새벽 2시를 도저히 보내줄 수가 없다. 내일이라도 다시 새벽 기상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26분.


달력상으로는 수요일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느 화요일의 늦은 밤.

묘하게 어긋난 이 시간 감각이 좋다.

해가 완전히 지고 하늘이 가장 어두워지는 시간이라 때때로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별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점도, 누구에게도 연락이 없는 게 당연한 시간이라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는 점도 좋다.

집에 있는 게 당연한 시간이라 집에만 붙어있는 집순이의 죄바카라감이 덜한 점도 좋다.

무엇보다도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백수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기분도 좋다.

적어도 내가 사는 세계에서 새벽 2시는 모든 생명이 잠든 시간, 그 시간에 나홀도 깨어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도 좋다.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다가 더 이상 잠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지쳐 쓰러져 자는 것도 좋다.


누군가는 비판할 것이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참으로 쓸모없는 시간 낭비이며, 노동력의 낭비이자, 젊음의 낭비라고.


그때는 실제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지금의 20대들조차도 이런 이야기를 보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에 재테크나 부업을 했어야지 않겠냐는 조언을 내게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대의 말이 맞다.

하지만 나의 삶도 맞다.

적어도 내게는 그 새벽들이야말로,

내 20대의 온갖 희로애락의 집합이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20대의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사치였으며,

특별하지 않은 내가 특별해질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그 때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내'가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고 회사를 위해서만 너무 열심히 일했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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