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이주 전의 일이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자려고 누웠는데, 정신이 말똥말똥 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렸다. (종종 생각이 말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나 춤추고 싶어!"
그리고 곧바로 다음 생각도 이어졌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이제와서 어쩌겠단 거야."
"근데 나 며칠 전에 '늦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었잖아. 춤, 노래라고."
"음... 확실히 그랬지."
"노래는 진짜 40대가 넘어서라도 시작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춤은... 진짜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음... 그러네."
요즘 내 내면의 소리가 꽤나 논리적으로 변해서, 제대로 설득당하고 있다.
영화 비긴어게인의 OST중 하나인 'Lost stars'에 이런 가사가 있다.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시여, 왜 젊은이들은 청춘을 낭비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나에겐 이렇게 해석되었다.
청춘은 젊은이에게만 주어지지만, 젊은이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낭비하기 바쁘다.
이렇게 낭비될 거라면, 청춘을 젊은이에게 주는게 대체 말이 되는 일이냐고.
그 아까운 청춘을.
나 역시 그런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30대의 시작선에 서서, 나는 더 이상 내 청춘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댄스학원에 등록했고 KPOP 댄스나 힙합 댄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 번째 수업날이었다.
내 하루에 생기가 더해지고, 내 몸이 자신감을 얻고 있는게 느껴진다.
비록 내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내뿜는 멋있는 강사 선생님을 보는 것 만으로도 설렌다.
함께 춤추는 사람들은 이름도, 직업도 모르지만 이 시간에 함께 해줌에 고맙다.
나 홀로 쓸쓸히 추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나말고는 모두 젊고 늘씬하고 안무 동작 하나하나를 엣지있게 잘 추는 실력파로 보여서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다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KPOP 댄스강사 자격증을 따서 독일에서 KPOP 강사로 일해보고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롱보드로 인한 발목 부상을 당해 포기했다.
마흔이 된 나는, 더 이상 KPOP을 추진 않는다. 이 글을 수정하기 전까지는 내가 서른에 케이팝 댄스를 배우러 갔었단 사실 조차 완전 잊고 있었다.
일년 전부터 나는 다시 주40시간 온라인 게임인의 삶으로 돌아가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얼마 전 태어나 처음으로 폴댄스를 배우고 왔다. 딱히 뭔가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삶이 너무 무료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상당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폴댄스 스튜디오는 삭막하기 그지 없는 교외의 아주 오래된 어느 빌딩 안에 있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었다. 지하실 특유의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3때 다녔던 힙합팀의 연습실에서 났던 냄새랑 똑같았다. 어쩐지 그리운 냄새였다.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은 나 말고도 3명이 더 있었다. 모두 서양 사람이었고, 20대로 보였다. 누군가는 나처럼 완전 처음인 초보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수업을 세 번 정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들 혼자 온 건지 유난히 서로 친해 보이는 사람은 없어 소외감은 덜 했다.
사실 기초 수업이라고 해서 좀 만만하게 보고 갔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소외감이고 어색함이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15분의 스트레칭 만으로도 이미 기진맥진했다. 마흔의 나는 서른의 나보다 더 뻣뻣했고 특정 동작에서는 왼쪽 어깨가 아파서 혼자서만 동작을 바꿔야 했다. 그래도 그런 게 부끄럽진 않았다. 예전의 나였으면 그게 부끄러워서 아프다는 말조차 못했을 텐데. 나이가 들어 뻔뻔해진 걸까?
기초 수업이니 그저 봉을 잡고 주위를 좀 걷다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마지막엔 봉에 매달려 뱅글뱅글 도는 동작까지 진도가 나갔다. 너-무 힘든데 너-무 재밌어서 마지막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서른의 나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너 임마 너!
마흔에도 춤, 출 수 있어!
계속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