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흥은 같은 말이 아닐까
아버지의 팔순 생신이다. 강화도의 펜션을 하나 빌려서 이 날을 기념했다. 형제들 중에서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아 연초부터 생각했던 계획을 한 차례 포기했는데도, 그런 뒤에 다시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에는 내가 날을 잡고 펜션을 예약하고 상차림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고 가족들에게 알렸더니 그제야 누가 뭘 하고, 누가 뭘 하며 뒤따르는 모양새가 잡혔다. 아무려나, 더 이상 속상해하거나 누구 탓을 하지 말고 나는 나의 마음에 따라 할 도리를 재간껏 하기로 한다.
펜션은 찾아보고 비교해 보기를 한 달간 하다가 거금을 들여 예약했다. 팔순 생신을 치르기에 부족함 없으면서도 까다롭지만 까다로운 속내마저 내비치고 싶어 하지 않는 내향인들인 우리 원가족들의 구미에 가능한 한 한 가지라도 더 맞는 곳이 기준이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대여 업체에서 보내준 물건들로 산수연 현수막을 걸고 비단 테이블보를 깔고 금촛대와 명주실, 목기러기 한쌍과 사방화 같은 것들로 상차림을 시작했다. 꽃송편 케이크와 오색송편, 수수팥경단, 청포도와 배, 큰언니의 잡채와 동그랑땡도 올렸다. 형부가 준비한 축하 꽃다발과 양주 한병, 내가 갖고 있던 와인도 올렸다. 100만 원 현금으로 만든 돈부채도 한켠을 차지했다. 아버지가 돈부채로 부채질을 하는 삶을 사셨다면 마음이 좀 달랐을까. 집에서 물품을 받고, 돈부채를 만들면서도 아버지의 마른 몸과 그을린 살갗과 검은 올을 찾아볼 수 없는 머리칼, 일생을 노동에 단련되었으면서도 늙음에는 저항할 수 없는 그 작은 몸이 떠올라 한없이 괴로웠다. 고작 돈을 내면 잔칫날 모양을 낼 수 있도록 상차림 물건들을 보내주고 또 간편하게 회수까지 직접 해가는 편의를 빌리면서도 마음은 진정이었던 것일까. 기쁜 날이면서도 슬픈 날 같은 마음들이 상 위의 잡채처럼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촬영 세팅을 한 뒤에 노래방기계로 생일축하 노래를 틀어두고 두 번, 세 번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눈물이 났다. 80 숫자 초를 부는 아빠를 보면서도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벤트로 준비한 돈벼락 용돈박스를 성미 급한 엄마가 눈치 없이 먼저 당겨버려서 산통을 다 깼는데도 마음이 아렸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는 어리둥절한 아버지의 멋쩍은 웃음이 흘러갔다. 나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방방 뛰며 과장된 몸짓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는데, 촬영까지 신경을 쓰느라 내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다. 다른 형제들도 조카들도 관찰하지 못했다. 형부의 주도로 자손들이 아버지, 엄마께 큰절을 올리는 시간도 있었는데, 나는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서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어느새 이렇게 다 늙어버리셨나요. 막내딸이 사십 중반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요. 아빠는 한눈팔 새도 없이 팔십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았는데 차마 가늠할 수도 없는 그 인생 불쌍하고 서러워서 이런 가벼운 잔치로 위로와 보답이 될 리는 만무하겠지요. 이런 잔치마저 그저 내 마음의 불편을 덜기 위한 행위인 것만 같아 괴롭습니다. 그것까지 다 내려다보시고 애써 웃음 짓고 계신 것은 아니신가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 깊게 내려앉던 내게 아빠보다 더 큰 몸짓으로 즐거워하던 엄마가 잔잔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이처럼 활짝 웃는 엄마, 일만 하는 아빠 옆에서 더 억척스레 일하던 엄마. 지지고 볶으며 같이 살아온 오십 년 세월의 반려인. 아빠의 오늘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자격은 단 한 사람, 오직 엄마에게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든 값싼 축하와 가벼운 진심으로 마음의 빚을 허락 없이 청산해 버리는 은혜를 스스로 베풀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아이처럼 진심으로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에 내 마음이 조금 펴진 것도 같았다.
돈부채로 부채질을 하는 아빠의 모습은 호응이 잘 맞지 않는 문장처럼 어색했다. 신기하고 재미난 것이지만 이런 호화는 아빠 인생에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해보라는 대로 돈부채질을 해보면서도 남의 물건으로 기분을 내는 듯, 아빠 얼굴엔 멋쩍은 표정만이 가득했다. 돈다발, 돈방석, 돈부채, 이런 것들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서글프지는 않았을까. 나는 아버지께 아낌없이 돈다발을 갖다 드리는 자식이 되고 싶었지만 그리 하지 못했고, 가끔 한 번은 돈방석에 앉혀 드리는 꿈을 꾸면서도 세상을 믿지 못하는 남루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근면과 성실이 내게 뿌리내린 대로 아버지의 결핍과 한 역시 내게 고스란히 배어들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쓸쓸한 체념과 회한의 안타까움을 아니 느낄 도리가 없다. 아버지의 옹이 박힌 손가락 마디마디, 살도 기름도 없이 힘줄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몸을 보면서 또다시 모든 모자람을 내년 생신으로, 또 십 년 후의 구순잔치로 미루어버리는 만행까지 부끄러움 없이 저지르고 있다. 일평생 누리지 못한 풍요가 갑자기 어느 한순간에 굴러들어 올 리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의 유예,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전히, 검게 굽은 아버지의 등허리뿐인 듯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