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의 결혼식

by김유리

지난달,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버지는 7남매 중 둘째다. 위로는 큰형과 남동생 둘이 있고, 아래로는 여동생 셋이 있다.

그중 첫째 여동생, 그러니까 내게는 큰고모의 딸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사촌 여동생을 만난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지 20년쯤 됐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결혼식 덕분에 평소에는 보기 힘들었던 친척들과도 10여 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아버지의 형제들은 대부분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고, 우리 집과 큰 고모네만 경기도 안산으로 올라와 생활했다. 같은 안산에 살던 큰 고모네와 우리 집은 서로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여러 일을 겪으며 사이가 멀어졌지만, 적어도 그 시절만큼은 그랬다.


어린 시절의 나는 광주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큰집의 사촌 언니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명절은 물론이고 방학이 되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며칠씩 함께 지내곤 했다. 특히 막내 사촌언니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내게는 언니가 없었고, 언니에게는 여동생이 없어서였을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우유 배달을 하던 큰엄마를 대신해 명절이나 방학이면 언니들과 함께 새벽 우유를 돌리던 일,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 주문해 둔 치킨을 싣고 오던 일, 명절이면 잘 곳이 부족해 현관 앞이며 화장실 앞까지 가족들이 빽빽하게 누워 잠들던 풍경까지.

북적북적했던 그 명절 분위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릴 때는 몰랐다. 그저 친척들이 많이 모여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명절마다 가장 분주했던 사람은 큰엄마와 사촌 언니들이었다. 음식 준비부터 손님맞이까지, 그 많은 일을 묵묵히 해냈기에 우리는 마냥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이 일요일이라 큰엄마와 사촌언니 부부는 하루 먼저 안산에 올라와 우리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 후식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의 절반은 사촌언니의 아들들 이야기였다.

사촌언니는 결혼을 일찍 해서 아들이 셋이다. 그중 둘째가 내년에 결혼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 기어 다니던 ○○이가 결혼을 한다고?"

내 기억 속 조카는 아직도 바닥을 기어 다니던 아이였다.

그동안 너무 왕래 없이 지낸 탓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을 가장 선명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사촌동생도, 조카도 그렇다.

그런데 집안 어른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놀다가 밥솥 위로 굴러 떨어져 다리를 데었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는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처도 희미해졌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몸의 상처는 사라졌는데, 그날의 이야기는 아직도 가족들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이야기로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두 모였다.


유전자란 참 신기하다. 첫째 고모의 딸과 둘째 고모의 딸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촌언니가 둘째 고모 딸에게 "왜 아직 웨딩드레스를 안 입었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하나도 안 변했다", "예전 그대로네."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바쁘다는 핑계, 멀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그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반가웠다.


가족이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세월이 흘러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함께 꺼내 웃을 수 있는 사람들.

결혼식은 사촌 여동생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내게는 흩어져 있던 가족의 시간을 다시 한번 이어 붙여 준 하루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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