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합니다 중년 사용 설명서에 관하여
― 바나나의 배꼽인사
중년은
최신형 같아 보여도
생각보다 예민한 기종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무리하게 사용하면
허리에서 경고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 기동 시에는
예열 시간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건 조심하세요.
예전에는 남보다
앞서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변화는
'눈치 보기 기능'이 자동 삭제되었다는 점.
좋은 사람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고,
가끔은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기능이
기본 탑재되었습니다.
중년은
배터리 효율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밤새 충전 없이도 잘 돌아갔지만
이제는 늦게 자면
다음 날 시스템 전체가 느려집니다.
기름진 음식, 과음, 야식 등을
과하게 입력할 경우
속쓰림과 후회의
업데이트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또한 기억 저장 장치에도
약간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금 하려던 말은 잊어버리면서
2~30년 전 유행가 가사는 자동 재생됩니다.
리모컨 찾다가 리모컨 들고 있고
휴대폰 찾다가 손에 쥔 채
한참 헤매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년은
의외로 따뜻한 기능이 많은 모델입니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괜히 밥 한 끼 더 챙겨주고
별일 없냐는 안부에도
괜히 마음이 오래 머뭅니다.
눈물 기능도 강화되어
옛 노래, 부모님 뒷모습,
반려견 영상만 봐도
예고 없이 작동될 수 있습니다.
사용 시 주의사항도 있습니다.
“너도 늙었네.” 이 말에는 웃지만
“살 많이 쪘다.”에는 은근히 상처받습니다.
그래도 중년은
아직 꽤 괜찮은 시기입니다.
조금 느려졌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졌고
조금 지쳤지만 함부로
사람을 버리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중년은
고장이 많은 나이가 아니라
오래 사용되어
더 사람 냄새가 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세게 다루지 마십시오.
겉으론 웃고 있어도
생각보다 마음이 약한 시기이므로.
중년은 청춘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청춘을 살아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