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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4시 37분에 눈을 떴다.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몰래 머리에 기폭장치를 심은 것처럼 4시 37분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정신과 육체 모두 눈을 뜨자마자 가볍고 맑은 상태였다. 그녀는 곧장 거실로 나가 도자기와 박스 앞에 앉았다. 동이 트지 않은 어둑한 거실에 앉아 이가 나간 도자기들을 본다는 것은 약간은 기묘한 기분이었지만, 그녀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그러니까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어둑한 거실 한가운데 앉아 이가 나간 도자기들을 본다.
이가 나간 그릇은 모두 버려야 해.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릇들을 버리지 못한 채 8시 6분에 이불 속에 들어갔고 정확히 3시간 42분만큼의 부족한 잠을 채운 뒤 11시 48분에 눈을 떴다. 11시 48분에 시작되는 일상은 묵직한 유화물감의 소용돌이 안에 갇힌 것처럼 혼미했다. 가족들은 3일 연속으로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그녀를 걱정했지만,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을 보내는 그녀를 보고 단지 피곤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2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족들 아침을 챙기고 시댁 어른들을 모시고 최근에는 친정아버지의 간병으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가족 모두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고, 그 누구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오전 8시에 일어나는 것도 아들이 군대를 가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 때문에 시시때때로 그녀에게 많은 요구들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집안에서 그녀의 역할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누가 시킨 것일까? 그녀는 집안일을 하다가 중간중간 거실 창 앞에 놓인 이 나간 그릇들을 보며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일까?’
누가 시킨 것이든 그것이 싫었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도 남편의 동생 내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녀가 도맡았다. 그 큰 제사상도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차렸고 동서는 와서 절만 하고 갔었다. 그런데 미련하게 그녀는 동서의 그런 행동이 전혀 불만스럽지 않았다. 마땅히 맏형님인 자신의 일이라고 여겼다. 친정아버지 간병도 언니와 오빠가 함께 나누어서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만 찾는 친정아버지에게 안 된다는 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그 먼 길을 오갔다. 언니는 조카 일을 돌보는 데 정신이 없고 새언니는 새언니대로 온라인 게임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날그날 쌓여 있는 설거지와 빨래더미였다. 새벽까지 모두 해 놓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는 가족들의 아침상을 차리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집을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겨우 10분 동안의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다. 그 뒤의 일상은 반복이다. 시부모님 수발과 친정아버지의 간병, 집안의 잡다한 일들과 때때로 중요한 서류를 빠뜨려 놓고 나간 남편을 위한 심부름이다. 그녀가 만나는 친구는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입시정보를 공유했던 학부모 모임이 전부였고 –이제는 대기업 취업정보 공유 모임으로 바뀌었다- 그런 곳에서 마음을 터놓는다는 것은 스스로 폭탄을 들고 탄광 안으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신중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보았다. 정말로 그런지는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을 때를 빼고는 입을 여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계가 3시 58분을 가리켰다. 그녀는 간단하게 장 봐온 것을 냉장고에 넣고 그 사이 마무리 된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빨래건조대에 널었다. 수요일은 친정아버지에게 가지 않아도 된다. 요양급여 제도로 신청한 요양보호사가 토요일 근무 일정을 붙여서 연장근무하기로 한 날이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쉴 수 있도록 요양보호사와 그녀가 생각해 낸 방법이다. 수요일은 그녀가, 토요일에는 요양보호사가 쉴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김치를 찜기에 넣고 물을 조금 부은 뒤에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저녁상으로 낼 김치찜이 제대로 익으려면 지금부터 찜기에 불을 올리고 끓인 다음, 한 김 식히고 상 차리기 직전에 한 번 더 데워야 맛있다. 찜에 곁들여 먹을 수육은 지난 새벽에 미리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릇에 담아 레인지에 한 번 데우기만 하면 된다. 그녀는 햇살이 따뜻하게 데워놓은 마룻바닥에 몸을 뉘고 이 나간 접시들이 마룻바닥에 드리운 얕은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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