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을 쓰다 보니, 글도 나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사원 때 쓰기 시작한 글, 어느새 부장이 되어 쓰고 있습니다"

by이드id


참 놀랍습니다. 사원 시절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부장이자 팀장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17년째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니 대박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면서 온라인 게임생활 다음으로 끈덕지게 해온 일이 글쓰기입니다. 따지고 보면 온라인 게임생활 덕분에 글쓰기도 가능했습니다. 제 글쓰기의 소재는 대부분 온라인 게임생활에서 나왔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원 말년이었던 2010년부터 글을 썼습니다. 대리, 과장, 차장을 거쳐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고 계속 쓰고 싶습니다. 십수 년 넘는 세월 동안 온라인 게임생활 이야기를 주야장천 썼다는 사실이 참 신기할 다름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 온라인 게임생활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렇게 오랜 기간 글을 쓸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연륜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는 눈이 달라지니 생각도 조금씩 진화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온라인 게임생활 관련 글을 쓸 수 있는 비법은 바로 만인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경험'의 힘입니다.


2010년 8월부터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주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헤매다, 자연스레 제 하루의 반을 보내고 있는 온라인 게임생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싱그러웠던 30대 초반 시절. 대박을 터뜨렸던 첫 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온라인 게임 내 소문, 와이프 임신한 남직원은 불륜의 주인공?>이었죠. 제가 경험했던 일이기에 솔직한 심경을 담아 써내려갔죠.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이어진 글이 <대기업 다니는 여자가 결혼을 안 해도 되는 이유?>였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쓴 여사친 이야기였습니다. 포털 메인을 오랜 시간 장식한 덕분에 욕을 아주 듬뿍 먹었죠. 악플이 400여 개 달렸고, 지우고 지우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용기를 내 예전에 제가 쓴 글들을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당시 제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나열한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목을 잘 뽑은 덕분에 조회수가 높은 글도 있었지만, 악플도 많이 받으며 멘탈이 휘청이기도 했습니다.


사원일 때는 지금처럼 업무에 대한 바카라임이 크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도 막내 급이다 보니 선배나 상사에 대한 글을 주로 썼습니다. 특히 그들에게 불만이 참 많았습니다. 이해와 깨달음을 담기보다는 못마땅함을 주로 표출했습니다.


대리가 되니 저와 연차가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후배들이 생겼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했죠. 후배들의 못마땅한 모습을 글로 옮겼습니다. 인사 안 하는 후배, 힘든 일을 요리조리 피하는 후배 등이 소재였습니다. 새파란 대리 나부랭이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마음을 슬쩍 품었던 거죠.


과장이 되니 회사와 팀에서 요구하는 것이 부쩍 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글에도 업무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처럼 온라인 게임생활에서 직접 부딪치며 깨달은 것들을 글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해야 할 일도, 바카라임도, 걱정도 늘어난 시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무렵의 글도 어느새 제 직급을 따라 과장급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심한 세월 덕분에 어느새 차장이 되었습니다. 차장은 팀장과 팀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지만 여전히 상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위로 올라가는 문은 점점 좁아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사와의 갈등, 후배와의 관계, 사람에 대한 고민을 자주 끄적였습니다. 조직의 중간에서 위와 아래를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자리의 무게가 글에도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팀장이 되니 또 전혀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사원도, 대리도, 과장도, 차장도 저마다의 사정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헤아려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자리가 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못마땅하기만 했던 팀장들의 마음도 뒤늦게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팀장이 됐다고 갑자기 마음이 넉넉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넓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법, 하고 싶은 말을 한 번 더 삼키는 법, 같은 말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건네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과 바카라임은 더 늘었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조금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제 글에는 그런 팀장의 서글픔과 고민,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내가 쓰는 글이 곧 나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렇게 직급에 따라 제가 쓴 글을 늘어놓고 보니 그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그때의 제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되짚어보는 일도 꽤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이 풍성해지는 한편, 예전 글을 읽다가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것마저 그 시절의 저였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불혹을 넘기면서부터는 온라인 게임생활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온라인 게임생활의 노하우를 담은 자기계발서를 지나,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감정을 듬뿍 담은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계기는 두 번째 바카라을 냈던 출판사 대표님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슬쩍 건넨 한마디였습니다.


"작가님, 에세이도 써 보세요. 섬세하셔서 잘 쓰실 것 같아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겪었던 온갖 감정이 뒤죽박죽 제 안에 쌓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도 감성 넘치고 민감하고 예민한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드니 크리스털처럼 연약한 마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렇게 속마음을 조금씩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게임 안에 머물던 제 이야기는 어느새 가족 이야기로 번졌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쓰다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그러다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까지 자연스럽게 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흘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도 변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눈물이 부쩍 많아진 것도 중년이 되어서야 누릴 수 있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여성호르몬 탓이라고 슬쩍 핑계를 대봅니다. 예전에는 화가 나서 썼던 이야기를 이제는 이해해 보려고 쓰고, 남의 이야기를 쓰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을 씁니다. 그렇게 세월을 따라 제 글의 주제도, 글을 쓰는 마음도 시나브로 변해왔습니다.


글쓰기와 함께한 세월을 되돌아보니 ‘내가 이렇게 변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사원 때의 글과 대리 때의 글이 달랐고, 과장과 차장을 지나 팀장이 된 지금의 글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제 마음은 어떻게 변하고, 그 마음을 담아내는 글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변화가 조금 기대됩니다. 예전보다 쉽게 화내지 않고,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삶을 조금 더 깊숙이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 글에도 조금 더 깊고 넉넉한 마음이 담겼으면 합니다. 오래 쓰면서 조금씩 묵직해지는 사람, 그리고 그 세월이 글에서도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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