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덕분에 오늘도 엄마와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수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인데, 엄마가 떠난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도 엄마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떠난 엄마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 입꼬리를 올리며 엄마를 생각해도, 이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입꼬리가 내려갑니다.
몹쓸 병마와 싸우는 엄마를 보며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사람이 평생 겪지 않는 병이 왜 우리 엄마에게 찾아왔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엄마를 보내고 15년 다닌 회사를 나와 이직하는 등 개인 신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쁘게 지낸 덕에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지만, 엄마의 1주기가 되니 슬픈 마음이 다시 깊어집니다. 여전히 엄마 얼굴, 모습, 목소리 모든 게 생생합니다. 엄마 옷도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보내고 떠나보낼 생각입니다.
작년 엄마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매일 밤 끄적였던 글을 들춰봤습니다. 엄마와의 하루하루를 기록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글을 써놓은 건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보니 너무나 소중한 기록입니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던 엄마와의 추억이 글을 읽을 때마다 다시 제자리로 들어와 자리 잡는 기분이랄까요.
엄마는 2021년 8월 10일까지 희미하게나마 말을 했습니다. 병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아름답게 가꾸신 분…"이라는 말을 건네 아주머니를 활짝 웃게 했고, "엄마, 내가 누구야?"라는 의사의 물음에는 "의사 선생님…", 진짜 아들의 물음에는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라는 희미한 목소리가 엄마의 마지막 육성 인사였습니다.
암세포에 점령당한 엄마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빨대를 입에 대면 물을 조금 마셨지만,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됐고 입은 벌어진 채 멈춰버렸습니다. 입이 마르지 않게 수시로 스프레이로 입안에 물을 뿌렸습니다. 입술이 갈라지고, 혀가 조금씩 말려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작년 8월 13일 오전 9시 병실에서 임종실로 옮겼고, 그날 밤 10시 반 엄마가 늘 자랑하던 하늘나라 별장으로 떠났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아침에 예쁘게 미용을 하고 엄마를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와의 기억이 까마득하지 않은 것은 엄마와 함께 지낸 순간을 기록해둔 덕입니다. 엄마와의 나들이, 손주들과의 윷놀이, 산바카라, 가족 생일, 한 달 반의 호스피스 병동 생활, 누나와 나눈 이야기가 글로 남았습니다. 가족 일기장에도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글은 이렇게 많은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입니다.
앞으로도 수시로, 그리고 매년 엄마와 방울방울 맺힌 이야기를 들춰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1974년 아빠가 1,000일 동안 남긴 누나의 육아 일기도 여전히 빛나는 추억으로 곁에 남아 있습니다. 아빠를 통해 글이 가진 위력을 진작에 경험했기에 더욱 열심히 적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떠난 엄마가 남긴 짤막한 일기도 엄마를 입체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엄마를 정성스럽게 기억하고 싶어 오늘도 끄적끄적 흔적을 남깁니다. 오늘의 흔적이 내년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요. 아이들도 아빠의 글을 보고 할머니를 한 번쯤 더 떠올리겠지요.
글쓰기는 소중한 삶의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