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이어야 하는지(Why me) 알려주세요!
일을 맡기려고 신세대 부하직원을 부릅니다. 업무를 설명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낯섭니다.
"제가요? 지금요?"
이 짧은 두 마디에 중년의 경영자들과 지휘관들은 순간 얼어붙습니다. 대화가 뚝 끊기며 밀려오는 당혹감. '내가 무리한 지시를 했나?' 하는 자기검열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서는 괘씸함과 서운함이 솟구치죠.
우리 세대에게 상사의 지시란 곧 군말 없는 실행이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로 받아치고, 부족한 시간은 밤을 새워서라도 메우는 것이 우리가 배운 주인의식이자 동료애였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청춘들은 내 면전에서 칼같이 선부터 긋습니다. 이 냉정한 반응을 보며 리더는 속으로 삼킵니다. "요즘 애들은 참 이기적이구나.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바카라임감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던진 "제가요? 지금요?"를 가만히 씹어보면, 그것은 거역도 이기주의도 아닐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도 당황이 숨어있습니다. 사실은 리더와 부하, 서로가 동시에 당황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지시 앞에 내 안전거리와 계획이 침범당할까 봐 주니어도 순간 얼어붙은 것이죠. 이 일이 나에게 왜 중요한지, 일의 '의미'를 묻고 싶지만 표현의 서투름이 방어적인 태도로 튀어나왔을 뿐입니다.
단군 이래 가장 좁은 문을 뚫고 들어와, 각자도생의 생존을 학습한 세대입니다. 영혼 없는 헌신과 맹목적인 복종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내 귀한 시간을 여기에 써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구합니다.
의미가 부재한 지시는 그들에게 침해와 개입의 문법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들이 치는 방어벽은 리더를 향한 반항이 아닙니다. 내가 왜 움직여야 하는지 확신이 서기 전까지 유지하려는 ‘안전거리’일 뿐입니다.
리더가 "위에서 시키면 하는 거지, 말이 많아"라며 그 선을 밟아버리면, 그들은 더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경영학을 연구하며 마주한 소통의 고수들은 결코 그 선을 강제로 지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로가 당황한 그 침묵의 찰나를 알아채고, 그 선 안쪽으로 안전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왜 당신이어야 하는지(Why me),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Why now) 일의 가치와 맥락을 리더가 먼저 명확하고 담백하게 짚어주는 것이죠. 내가 움직여야 할 '의미'가 확인될 때, 청춘들은 비로소 그어놓았던 빗장을 풀고 조직의 목표를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이 데이터는 자네의 꼼꼼한 눈이 아니면 정교함이 떨어져서 그래. 마감은 금요일까지면 충분하네."
이것은 리더의 양보가 아닙니다. 맹목적인 지시를 멈추고 일의 의미를 연결해 주는, 가장 격조 높은 리더십의 문법입니다.
글로벌 조직문화의 거장,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화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고 조직에 기여하기 시작한다. 리더의 역할은 부하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Circle of Safety)'를 만드는 것이다."
하수는 부하가 긋는 선과 서로의 당황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관계를 단절하고, 고수는 그 선 안의 불안과 의미에 대한 목마름을 읽어내어 진짜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줍니다.
서로가 당황한 회의실의 침묵을 깨고, 부하의 방어벽 안으로 들어가 일의 '의미'를 장착시키는 두 가지 실전 행동 지침입니다.
1. 감정을 걷어내는 '앵무새 화법'과 'Why'의 공유 "제가요? 지금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감정적으로 욱하지 마십시오. 우선 상대의 말을 담백하게 한 번 인정해 준 뒤, 왜 그(Why me)여야 하는지 의미를 얹어줍니다.
Bad: "그럼 자네가 안 하면 누가 하나? 다들 바쁜 거 안 보여?"
Good: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나 보군(인정). 이번 건은 고객사의 성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자네가(Why me) 리드해 주는 게 프로젝트 성공 확률이 가장 높아서 불렀네."
2. 리소스 확인을 통한 '타임라인(Why now)' 조율 "지금요?"라는 말은 현재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가 뒤엉킬까 봐 두려워하는 신호입니다. 리더가 먼저 상대의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조율해 주면 선을 풀고 들어옵니다.
실전 대화법: "지금 자네가 붙잡고 있는 A 보고서 마감이 내일까지지? 그 리소스를 고려해서 이 건의 마감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로 여유를 주겠네. 지금 하던 일과 우선순위를 내가 조정해 줄 테니 안심하고 맡아보게."
변진섭 — 〈너에게로 또 다시〉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짙은 어둠 속에서 은빛 찬란한 너의 눈동자를 보아왔는지 너의 따스한 손길이 나를 감싸올 때면 언제나 나는 너의 눈물겨운 사랑을 느꼈지
이제는 말할 수 있네 지나간 시간들은 너를 위한 나의 기다림이었다고
너에게로 또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나 봐 그대 없는 세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찾아 떠나갔던 네가 아픔만 안고 돌아오는 날 그대의 지친 어깨를 내가 안아주어야지
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선 퇴근길, 지친 당신의 자동차 안이나 조용한 집무실에 이 익숙한 멜로디를 띄웁니다.
"제가요? 지금요?"라며 선을 긋는 부하들을 보며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가사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찾아 치열한 세상 속을 헤매다 이미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청춘들일 뿐입니다.
의미를 찾지 못해 불안해서, 그리고 당황해서 쳐놓은 그 방어벽 뒤에서, "그대의 지친 어깨를 내가 안아주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의 가치를 짚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그 서정적인 넉넉함이야말로 오늘 밤, 세대의 거대한 벽 앞에서도 의연하게 중심을 잡는 X세대 리더에게 필요한 가장 깊은 내공의 발라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