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동짓달, 동래 초량왜관
정오의 갯바람은 살을 발라내듯 차가웠다.
동래 초량왜관 설바카라문(設柵門) 앞의 공터는 밤새 내린 서리로 희게 얼어붙어 있었다.
키를 넘기는 참나무 목바카라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왜학훈도와 감관, 그리고 바다 건너온 일본 쓰시마의 관수왜(館守倭)와 대관(代官)들이 말없이 마주 섰다. 뿜어져 나온 허연 입김만이 허공에서 뒤섞였다가 서릿발 속으로 흩어졌다.
얼어붙은 흙바닥 위에는 멍석 두 장이 나란히 깔려 있었다.
하나는 때 절은 옷섶을 풀어헤친 채 은괴 쉰 냥으로 조선 인삼 여덟 근을 사사로이 사들이다 수문군에게 덜미를 잡힌 쓰시마의 왜상(倭商).
다른 하나는 흙투성이 무명 바지춤에 은괴를 쑤셔 넣다 설바카라 밖에서 결박당한 채 허연 입김만 헐떡이는 동래의 조선 잠상(潛商).
멍석에 꿇어앉은 두 사내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밑에서 허옇게 얼어붙었다. 관원들의 발치에는 장물로 챙겨 둔 인삼 상자와 때 묻은 은괴 꾸러미가 팽개쳐져 있었다.
나이 든 조선의 왜학통사가 품에서 빳빳한 관바카라(官冊)을 펼쳤다. 장부를 쥔 앙상한 손가락은 혹한에 굳어서인지, 아니면 수없이 겪어온 일 탓인지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쇠칼로 얼음을 긁어내듯 메마른 음성이 침묵을 깼다.
"금표로 정한 경계 밖으로, 대소사를 막론하고 함부로 난출(闌出)하여 지경을 넘은 자는 일죄(一罪, 사형)에 처할 일. 몰래 잠입하여 장을 벌이거나 사사로이 밀무역(潛商)을 행한 자 또한 참형에 처한 뒤 효수(梟首)할 일."
수문 곁에 차갑게 선 『약조제찰비(約條制札碑)』의 붉은 음각 글귀가 정오의 비낀 햇살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禁標定界之外 毋論大小事 闌出越犯者 論以一罪事
潛入開市 潛商買賣者 亦以斬刑梟示
이어 촌마게를 튼 쓰시마의 통사가 칼칼한 왜어 훈독(訓読)으로 같은 조문을 무표정하게 되받아 읊었다.
선고가 끝나자 통사는 바카라장을 덮었다.
탁, 하고 닥종이가 맞물리는 건조한 마찰음이 정적을 갈랐다.
자비도, 문바카라도 없었다.
양국 관원의 눈빛이 교차하자마자, 양쪽의 집행인이 동시에 어깨를 틀며 칼을 뽑아 올렸다.
조선 측 망나니의 두터운 환도와, 쓰시마 무사의 번뜩이는 장도가 겨울 햇빛을 받아 나란히 서슬 퍼런 궤적을 그렸다. 서릿발 낀 흙바닥 위로 두 번의 둔탁한 파열음이 연달아 울렸다.
두 개의 목이 멍석 밖으로 굴러떨어지는 데는 숨 한 번 들이켤 틈도 걸리지 않았다.
뿜어져 나온 검붉은 선혈이 얼어붙은 흙을 녹이며 제찰비 비석의 댓돌을 붉게 적셨다. 비석에 새겨진 '일죄(一罪)'라는 두 글자 위로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목바카라 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 몇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랐을 뿐, 조선의 군졸도 쓰시마의 무사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일 따름이었다.
소맷자락에 손을 찔러 넣고 서 있던 쓰시마의 무사 둘이 다가와 익숙한 손놀림으로 거적을 펴 제 나라 상인의 시신을 말아 올렸다. 조선의 사령 둘은 조선 잠상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장대 끝에 꿰어 올릴 짚단을 챙겼다. 흙을 걷어차 핏자국을 덮는 발길질 소리만이 삭막하게 이어졌다.
이백오십 년 동안 조일 양국이 그어둔 경계선은 그렇게 완강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제 나라 백성이든 이국의 사람이든 예외 없이 목이 잘리는 단벌(單罰)뿐이었다.
그러나 그 서슬 퍼런 목바카라 너머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빗장을 열고 들어선 왜관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은괴와 구리, 조선의 인삼과 비단이 쉼 없이 오가며 막대한 이문이 들끓었다. 조선의 땅이되 왜인들의 규율로 숨을 쉬고, 왜국의 풍속을 따르되 왜국 본토는 아닌, 오직 두 나라가 맞물린 틈새에만 존재하는 기묘한 섬과 같았다.
피 묻은 칼날로 다져진 이 위태로운 평화를, 국경을 지키는 관원도 바다를 건너온 왜인도 의심치 않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