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한국민속극박물관 호랑이탈과 고성탈박물관 범탈
요즘 쇼츠 영상에 ‘춤추는 호랑이’가 있길래 보았더니, 강남도로에서 두 발로 일어서서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또한 K팝 그룹인 슈퍼엠(SuperM)이 2020년에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강렬한 리듬에 호랑이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안무를 결합한 「호랑이(Tiger Inside)」라는 노래를 발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엄을 내려놓고 춤판에 뛰어든 호랑이의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묘한 매력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호랑이춤이 없었을까 하고 찾아보니, 호랑이탈과 관련된 놀이문화가 있다는 것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은 호랑이탈과 그 놀이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지난 9월 6일, 9월 13일 각각 충남 공주와 경남 고성으로 길을 나섰다.
열두 띠 탈놀이에서 만난 호랑이
첫 번째 목적지는 충남 공주의 한국민속극박물관이었다. 이곳에 오니 자연스럽게 한 인물이 떠올랐다. 민속학자 심우성(沈雨晟, 1934~2018) 선생이다. 민속극과 민중문화의 대부요, 남사당놀이에서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제창하신 선구자였다. 예전 공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먼발치에서나마 열정적으로 민속극 공연을 하시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곳에 열두 띠 탈놀이의 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설날과 같은 명절이나 경사 때 행해지던 탈놀이로 공주시에서는 의당 돌모루 유랑예인 축제 등에서 재연하고 있었다. 첫 번째 호랑이탈은 볏짚으로 꼬아 만든 줄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탈이었다. 눈과 입 주위에 빈 공간을 만들고 탈을 쓰면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목 부위에도 빈 공간이 나 있도록 짠 것이 특징이었다.
두 번째 탈은 지승(紙繩, 종이끈)으로 만든 제법 그럴듯한 탈로 호랑이의 특징을 잘 살려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황색 바탕에 호랑이의 시그니처, 검은 줄무늬도 표현되었고, 코는 붉은색으로, 눈썹과 수염 등 털들은 하얀색으로 제작한 걸 볼 수 있었다.
열두 동물 가운데 호랑이가 갖는 상징성은 남다르다. 호랑이는 실제 산속의 맹수인 동시에 산신의 사자(使者)이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동물이며, 때로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익살스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탈 속에 들어온 호랑이는 단순히 동물의 얼굴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 탈을 쓰는 순간 호랑이는 눈을 뜬다. 장단이 시작되면 호랑이는 살아나 몸도 움직이고, 춤도 춘다. 호랑이탈은 호랑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되는 장치였던 셈이다. 탈은 단순한 공연 소품이 아니었다. 탈을 쓰는 것은 다른 존재가 되는 행위였다. 그래서 호랑이탈은 사람과 호랑이, 현실과 신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이었다.
범이기도 담비이기도 한 탈을 찾아서
다음으로 찾아가 본 곳은 남해가 지척으로 보이는 경상남도 고성의 탈박물관이었다. 이곳은 국가무형유산인 고성오광대놀이의 본고장이다. 2005년 문을 연 이곳은 국내의 대표적인 탈 전문 박물관으로 한국의 탈뿐 아니라 외국탈 등을 소장하며 탈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에 이곳을 찾은 목적은 부산 수영야류(水營野遊)의 범탈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눈 씻고 봐도 범탈은 보이질 않았다. 다른 탈들은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작 사자탈과 범탈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예전 특별전에서 한번 공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쉽지만 당시 이미지로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연된 이미지를 보자. 범, 즉 호랑이다. 특유의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데, 중간중간 표범의 점무늬도 있는 게 아닌가. 조선 무인흉배에서 본 호표 문양과 닮았다. 범탈도 온통 점무늬에 위로 치솟은 하얀 수염과 입가 주변으로 날카로운 이빨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탈은 ‘담비’ 또는 전승상 ‘담보’라고도 부른다는 점이다. 사실 범과 담비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동물이다. 범은 고양이과고 담비는 족제비과 동물이다. 그런데 왜 탈놀이에서는 두 이름을 혼용해서 쓰고 있는 걸까.
수영야류의 전승 설명에서는 제4과장에서 사자와 범, 즉 담비가 함께 등장해 춤추고 싸우다가 결국 사자가 범을 잡아먹는다. 현지 전승에서는 범을 담비라고도 하며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호랑이 잡아먹는 담비’라는 속담처럼 민간에서 담비를 매우 사나운 동물로 인식했던 관념도 그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산천의 제왕 호랑이가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이는 호랑이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이에 수영 지역에는 호환을 막기 위해 사자가면을 쓰고 놀았다는 전승과 마을 주변 지형과 관련해 사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범을 제물로 삼는 내용을 연희했다는 전승 등이 함께 전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자는 우리에게는 없는 불교적 색채와 상징적인 존재이고, 호랑이는 실존하는 위협이며 탐관오리 등을 대변하기도 하니까 은연중에 놀이로 이를 풍자해 응징하고 싶었고,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해코지당할까 두려워 담비라는 이중 장치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호랑이의 새로운 탈을 씌울 때
이번 여정에서 만난 호랑이는 이전의 호랑이들과는 달랐다. 탈 속 호랑이는 움직였다. 사람의 얼굴 위에 올라앉았기 때문이다. 호랑이탈은 사람을 호랑이로 바꾼다. 사람이 탈을 쓰고 네 발로 기어가면 호랑이가 된다. 으르렁거리면 호랑이 소리가 되고, 뛰어오르면 호랑이의 몸짓이 된다. 결국 탈은 호랑이를 가장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문화 장치인 셈이다.
‘탈’이라는 말도 참 재미있다. 얼굴에 쓰는 것도 탈이고, 문제가 생겨도 ‘탈이 났다’라고 한다. 반대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탈을 벗는다’라고 표현한다. 탈은 가리고, 드러내고, 바꾸는 물건이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탈을 씌운다는 것은 단순히 호랑이 얼굴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호랑이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새로운 얼굴로 표현하는 일이다.
이제 한국호랑이에게도 새로운 탈을 씌울 때다. K-컬처의 정신을 담은 새로운 K-호랑이탈을 만들어 세계인들이 쓰고, 춤추고, 사진을 찍고, 축제에서는 수백 마리의 호랑이가 거리를 누비며, 공연장에서는 호랑이탈을 쓴 춤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쩌면 세계인이 열광할 새로운 K-콘텐츠는 거창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오래된 호랑이탈 하나. 그 탈을 다시 쓰는 순간, 호랑이는 또 춤추기 시작한다.
[여정코스]
천안 - 공주(38km) - 고성(243km) - 천안(273km) : 554km
누적 : 8,757km
[장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