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는 조선의 명품이었다.

[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국립박물관 소장 호피 관련 유물들

by해아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겁나고 가죽은 탐난다.’라는 속담처럼 호피는 예로부터 희소하면서도 귀한 물건이었다. 그래 먼저 『조선왕조실록』에서 호피(虎皮)를 검색해 보니 무려 375건이 나왔다. 특히 성종조에는 77건이 기록될 정도였다.


이를 다시 분류해 보면 ① 진상·공납품 ② 중국에 보내는 진헌품·외교 물자 ③ 일본·대마도로 보내는 외교 선물 ④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포상 ⑤ 시험·교육·학문 포상 ⑥ 군사·무예·공로 포상 ⑦ 왕실의례·국가행사 공로 포상 ⓼ 생활용품·깔개 재료 ⑨ 호랑이 포획 등과 관련된 물품으로 등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특히 15세기에는 진상·외교적 활용이 두드러지고, 조선 후기에는 왕이 신하에게 특별히 내리는 상징적 포상물의 성격이 강해지는 흐름을 보였다.


그래서 이번 여정은 호피와 관련된 유물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9월 20일 서울 일원 국립박물관들을 탐방했다.


호피무늬 명품 유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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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세계 3대 박물관 반열에 우뚝 섰다는 현수막처럼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전시장은 인산인해로 붐볐다. 하지만 목적이 호랑이를 찾는 거라서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져도 관련 유물을 찾지는 못했다. 희소한 만큼 실물 보기는 더더욱 어려움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관련 이미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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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꽃무늬를 수놓은 표번 양탄자 (공공누리, 국립중앙박물관)

호피 관련 유물 중 단연코 최고의 명품은 국립박물관 소장 <오얏꽃무늬를 수놓은 표번 양탄자>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호랑이 가죽인 호피(虎皮)가 아니라 표범 가죽인 표피(豹皮)지만, 조선 왕실에서 호피와 표피가 모두 권위 있는 모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호피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다.


크기는 240×574cm로 대형 양탄자다. 앞면은 약 48마리분의 표범 등가죽을 이어 붙여 사용했는데, 유전자 분석을 통해 북중국표범 계통으로 확인되었다. 뒷면은 빨간천 위로 4면 모서리에 대한제국 황실 무늬인 오얏꽃이 수눃아져 있다.


한때 이른바 <명성황후 표범가죽 양탄자>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박물관 조사 결과, 정돈된 오얏꽃 문장의 형태 등을 근거로 대한제국 선포 이후 제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사용 흔적 역시 일상적인 깔개라기보다는 황실의 특별한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2010년 조선실에서 일정 기간 공개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대형 모피 유물의 보존 문제 때문에 수장고에 보관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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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정은 경복궁의 국립고궁박물관이었다. 이곳 또한 한류의 진앙지로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많았다. 이곳에 온 목적은 정조의 〈화성능행도병풍〉을 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실물은 아쉽게 볼 수 없었지만, 복제 이미지를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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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풍은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서 거행한 여러 행사를 그린 여덟 폭의 기록화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제3폭이 바로 혜경궁의 회갑연을 그린 〈봉수당진찬도〉다. 이는 1795년 윤2월 13일 봉수당에서 열린 진찬으로 정조의 화성 원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이미지를 보자. 화성 봉수당에서 성대한 회갑연 행사가 거행되고 있고 우측 상단에는 혜경궁 홍씨가 타고 온 가마가 보인다. 가마 안을 보라. 가운데 덩그러니 호피 방석이 있는 게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호랑이 가죽이 아니다. 호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짜 가죽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귀해지면 직물과 그림으로 그 무늬가 대체된다. 재료는 바뀌어도 호피가 지닌 위엄과 화려함은 그대로 전해진다. 호피는 이미 동물의 가죽을 넘어 권위의 문양으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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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문 가마덮개 (공공누리, 국립민속박물관)

마지막 목적지는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왕실에서 권위를 상징하던 호피가 민간으로 내려오면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진다. 바로 벽사(辟邪,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개하고 있는 20세기 초 사인교와 가마덮개를 보자. 혼례를 마친 신부가 시댁으로 갈 때 타는 가마 지붕에 호랑이 가죽이나 호피무늬 덮개를 얹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목적은 액운이 신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었다. 왕에게 호피가 권력이었다면 신부에게 호피는 수호였다. 생각해 보면 절묘하다. 산중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 했던 맹수의 가죽을 인간은 오히려 몸 가까이에 두었다. 가장 두려운 존재가 가장 강력한 수호자로 바꾼 것이다.


가죽은 사라져도 무늬는 살아남는다.


호피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첫째는 강렬한 대비다. 황갈색 바탕을 가르는 검은 줄무늬는 숲에서는 몸을 숨기기 위한 보호색이겠지만 멀리서도 단번에 시선을 붙잡는 강렬한 디자인임은 분명하다. 둘째는 반복되면서도 똑같지 않은 자연의 패턴이다. 사람의 지문처럼 호랑이의 줄무늬도 개체별로 모양이 각자 다르다고 한다. 이마에는 한자 임금 왕(王) 자의 줄무늬가 있어 산왕(山王)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고, 등을 가로지르는 줄무늬는 24개란다. 동양에서는 계절을 24절기로 나누는데, 공교롭다. 그리고 꼬리의 고리모양은 9~10개라고 한다. 셋째는 무늬 뒤에 숨어 있는 서사다. 용맹, 권위, 벽사, 수호라는 수백 년의 문화적 기억이 호피 한 장에 겹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호피는 조선의 명품이었다. 물론 오늘날 야생 호랑이와 표범은 보호해야 할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이제 진짜 가죽을 소비하는 시대의 논리를 되살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가죽이 아니라 무늬와 이야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거대한 표피 양탄자에서 국립고궁박물관의 그림 속 방석을 지나 국립민속박물관의 신부 가마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여정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조선 사람들은 호랑이를 잡아 가죽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 가죽에서 무늬를 발견했고, 무늬에 권위를 입혔으며, 마침내 그 무늬를 자신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호피는 낡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명품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재료는 사라져도 디자인은 남고, 물건은 사라져도 이야기는 계속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호피는 지금도 여전히, 조선이 남긴 가장 강렬한 명품 가운데 하나였다.


[여정코스]

천안 - 국립중앙박물관(101km) - 국립고궁박물관(8km) - 국립민속박물관(1km) - 천안(103km) : 213km

누적 : 8,970km


[장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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