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가 있는 호랑이

[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가회민화박물관 호랑이 뼈 장신구

by해아리

‘뼈대가 있는 집안’,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히 뼈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이 뼈라고 한다면 집안을 바로 세우는 것은 오랜 전통과 정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뼈대가 있다’라는 표현은 근본이 있고 전통이 있으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살은 없어져도 뼈는 남는다. 겉모습은 변해도 뼈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건물도 뼈대가 튼튼해야 오래 버티고, 사람도 중심이 바로 서야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호랑이는 살아 있을 때 두려운 존재였지만 죽어서는 버릴 것이 없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특히 호랑이 뼈는 선사시대부터 벽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실제 생활 속에서는 중요한 동물성 약재로 근골과 관련된 질환 등에 사용되었고, 호랑이 뼈를 원료로 했다고 알려진 각종 고약과 약품 등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번 여정은 호랑이 뼈와 한국 호랑이 문화의 정신적 뼈대를 알아보고자 지난 9월 6일, 우리나라 문화 일번지인 서울 종로구 가회동 일원을 탐방했다.


한국호랑이 문화의 산실과 한국호랑이의 어머니


요즘 K-컬처의 열풍으로 경복궁과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아마도 그들은 이곳이 우리나라 문화의 일번지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 한복도 입고 북촌 골목길을 누비면서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연 우리 문화의 뼈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고 서울 종로 가회동 골목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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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찾아가 본 곳은 한국호랑이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민화 전문 박물관인 가회민화박물관이었다. 사실 이곳을 찾은 것은 한국호랑이 유물도 있겠지만 윤열수 관장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다. 일전에 충북 보은 에밀레 박물관과 조자용 선생 묘소로부터 한국호랑이의 순례가 시작되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한국호랑이 문화의 뼈대를 세워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외 출타 중이시라 뵙지는 못했고 최근 통화로 향후 찾아뵙기로 했다. 한국호랑이의 아버지는 뭐라고 해도 조자용 선생이다. 잊혔던 한국호랑이 문화를 다시 발굴해 토대를 세우고 한국호랑이를 새롭게 알리는 데 일조한 공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 최근 조자용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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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용 선생이 하버드대학원 건축 전공에서 한국호랑이의 재발견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기초적인 뼈대와 선 굵은 행보를 보였고 풍기는 풍모 또한 산군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면 윤열수 관장은 1972년 20대부터 조자용 선생의 에밀레박물관에서 한국호랑이를 접하고 거의 60여 년간 기층문화인 민화 연구를 통해 한국호랑이의 뼈와 살을 붙인 ‘한국호랑이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풍기는 풍모 또한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까치호랑이를 닮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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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민화 관련 서적에서 한국호랑이를 다뤘고 ‘한국 호랑이’(열화당) 단행본에서부터 최근 편찬한 ‘한국 호랑이의 모든 것, 민화 호랑이’(가회박물관출판부)은 국내외 호랑이 유물들을 망라한 한국호랑이의 바이블이라 칭할만하다. 소장유물은 민화, 부적, 무신도, 각종 민속품 등 총 7,500여 점을 수집했고 그중 호랑이 관련 유물은 1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전시도 올해 ‘GOOD LUCK from K-Tiger’(2026) 등 각종 특별전을 비롯하여 프랑스, 폴란드, 일본, 중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매해 해외 전시를 개최하는 등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국호랑이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비록 지하에 작은 전시장이었지만 까치 호랑이 민화 그리기 체험 등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뼈에 깃든 호랑이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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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호랑이 뼈 유물을 탐방해 보자. 지하로 내려가 전시장을 들어서자 좌측으로 유리 유물장 안에 호랑이 뼈가 전시되어 있었다.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먼저 호랑이 이빨을 이용한 도장이다. 이빨은 호랑이가 먹잇감을 제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도장은 자신의 이름과 권위를 새기는 물건이다. 작은 물건이지만 그것을 찍는 순간 한 사람의 의사와 권위를 증명한다. 여기에 호랑이라는 동물이 가진 권위와 벽사의 상징성이 더해진다면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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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호랑이 발톱 장신구다. 호랑이의 발톱은 단순히 날카로운 손톱이 아니라 사냥감을 붙잡고 제압하는 갈고리형 무기다. 특히 앞발의 힘과 결합될 때 위력이 커진다. 호랑이가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동물로 인식되면서 호랑이 발톱을 노리개나 장신구로 만들어 몸에 지니는 풍습이 나타났다. 실제 발톱의 공격성이 상징적으로는 ‘나쁜 기운을 찍어 누르고 물리치는 힘’으로 전환된 셈이다. 특히 어린이나 여성이 몸에 지니는 장신구에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액운을 막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함께 담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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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과 주립 (출처 ; 공공누리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수염 역시 특별하게 여겨졌다. 호랑이 수염은 일반적인 털과 달리 촉모로 공간과 장애물을 감지한다. 얼굴 가까이에 있는 물체나 풀, 나뭇가지 등에 수염이 닿으면 그 정보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둠 속이나 시야가 제한된 숲에서도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먹잇감과 아주 가까워진 상황에 유용하다. 이렇게 빳빳한 수염을 모은 호수(虎鬚)를 보통 붉은색 계통으로 꾸민 주립 양옆에 꽂았다. 이는 착용자의 위엄과 신분, 복식의 성격을 나타내 주고 있다.

구례 운조루 호랑이뼈.jpg구례 운조루 호랑이 뼈 (출처 ; 공공누리 국립민속박물관)

또한 호랑이 뼈는 보통 ‘뼈대 있는 집안’ 고택의 대문이나 대청마루 등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좀처럼 볼 수 없지만 흑백사진 속에서나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흑백사진을 한번 보자. 이곳은 전남 구례 운조루다. 조선 후기 양반가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고택으로 대문 홍살에 호랑이 넓적다리로 추정되는 뼈를 걸어 놓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호랑이에게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가죽에서 뼈, 이빨, 발톱, 수염에 이르기까지 호랑이의 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상징체계였다. 이는 인간과 호랑이가 함께 살았던 시대를 증언하는 생활사의 화석이었다.


한국 문화의 뼈대, 한국호랑이

오늘날 우리는 K-컬처를 앞세워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K-컬처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행만으로는 부족하다. 뼈대가 있어야 한다. 그 뼈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은 한국문화 속에서 선사시대부터 우리 문화의 가장 기층까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 한국호랑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적 DNA다.


그러나 전통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K-컬처의 미래는 아니다. 옛사람들이 호랑이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왜 그것을 그리고 몸에 지녔으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를 이해한 뒤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


살은 사라졌지만 뼈는 남았다.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호랑이 문화는 남았다. 그리고 그 오래된 뼈 위에서 새로운 한국문화가 자라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무작정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문화의 뼈대를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뼈대 있는 호랑이. 그 작은 호랑이 뼈 한 조각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K-컬처에는, 과연 어떤 뼈대가 있는가?”


[여정코스]

천안 - 가회민화박물관(103km) - 천안(103km) : 206km

누적 : 8,203km


[장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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