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 <예배방 종소리 > 유정 이숙한
1987년 식품제조업을 시작한 동네, 그때부터 알고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예전에 살던 집이 아니고 다른 집으로 이사해 살고 있었다. 살림꾼이라서 뭐든 아끼고 살뜰하게 챙기는 친구다. 지난주 다른 친구와 셋이 만나서 염소탕과 갈비탕을 사준 친구다. 게다가 나는 두 그릇, 다른 친구는 갈비탕 한 그릇을 싸줬다. 친구 덕분에 초복 하루 전날 몸보신도 기분이 좋았다.
친구는 나처럼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다. 나보다 한 달 정도 빨리 받았다. 나는 왼쪽무릎인데 친구는 양쪽 무릎을 수술받았다. 그 친구와 나는 장안제일교회에 다녔다. 2000년 장안면 독정리로 이사 오기 전까지 다녔던 친정 같은 교회이다. 우리 친구는 신앙심이 두텁고 신실하다.
동갑내기 한 친구가 더 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기로 했다. 친구는 나보다 결혼을 5년 먼저 해서 자녀를 일찍 낳았다. 우리는 문화가 같고 비슷한 점이 많다. 나와 친구는 척추측만증 동지다. 나는 허리 디스크와 목디스크를 운동으로 나았지만 친구는 낫지 않았다. 목디스크에 편백나무를 반으로 자른 목베개로 목을 늘려주는 운동을 하면 목디스크는 좋아질 수 있다. 내가 그 베개 덕분에 목디스크가 나았으므로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가져다주었다.
친구는 내게 뽕잎 데쳐 얼린 나물과 깻잎 데쳐서 얼린 나물, 블루베리까지 챙겨주었다.
난 됫박으로 주고 말로 받아온 셈이다. 내가 레몬매실무생채를 갖다 주며 그릇은 챙겨달라고 했더니, 반찬을 담은 유리 용기를 몇 개 챙겨 주었다. 친구가 내게 친정 같은 장안제일교회에 가보자고 했다.
경기도 화성시 만세구 장안면 장안고잔길 5에 주소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장안제일교회!
1987년에도 있던 종탑이 그대로 있다. 전에는 키가 3미터가 넘었는데 세월이 흘러 키가 나처럼 작아졌다.
어릴 적 멀리서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설렜다.
예배를 알리는 종을 칠 수 있는 현존하는 종탑이 장안제일교회 마당에 있다.
이 교회에 시무하는 김두희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신앙의 선배 같은 분이다. 사모님도 정이 많으신 분이다.
200여 가구가 사는 장안 8리와 장안 5리 주민들!
화성시 장안면 장안 5리와 장안 8리 동네의 탄생은 오육십 년 전 바다를 막아 강을 만들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간척지가 농지가 되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간척지에 처음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3년 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벼를 심으면 짠기가 있어 볏모가 말라죽었다고 한다.
간척지에 보리를 심었더니 벼가 잘 되고 쌀이 야무져 간척지 쌀을 알아준다.
1987년 10월 시골집 마당에 제조장을 짓고 식품제조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 동네이다.
큰아이가 교회 옆에 있던 장안어린이집에 4세부터 6세까지 다녔다.
지금은 그 건물을 부수고 아담한 예배당을 지었다. 어린이집이 없어져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
온수골이란 따뜻한 물의 나오는 골짜기이다.
교회 한편에 카페를 만들어 마을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도 카페 옆에 있었다.
25년 만에 이웃끼리 한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친구와 내 모습을 담았다. 오길 잘했다.
사람은 전에 살았던 곳을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기억한다.
꿈을 꾸면 어릴 적 자라던 시골집 동네가 꿈의 배경이지만 언젠가 이 동네도 꿈속 배경에 등장하지 않을까?
기억의 숲이 아닌 현존하는 장소에 가보니 마음이 따뜻했다.
벽에 있는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인데 엉겅퀴를 그린 것이다.
작도 아담한 카페 내부 모습이다.
우린 하나의 소품처럼 내부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카페 옆 모퉁이에 그린 벽화이다.
내가 새로운 출발을 했던 곳!
이숙한 산문집 "또 하나의 계절, 화성"에 등장하는 신앙의 시작점이 장안제일교회이다.
가끔은 이곳에 들러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보려고 한다.
신앙이란 내 마음을 잡아주는 열쇠 같은 것!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