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침내 빨간 펜을 들다.
그렇게 이 옥봉의 시를 탐색하고 보니 어느새 강원도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스스로 강원도전에 다가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전이 기꺼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이게 고마운 일인가? 반가운 일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괴로운 일인가?
아마도 모든 대회가 그리 유쾌하거나 꼭 흥겨울 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비록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온몸으로다가 그리고 심적으로 받고 있는 내적인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치 온몸 여기저기 흠씬 두들겨 맞은 것만 같다.
스승님께 체본을 받고 나서 동일한 시를 여러 번 쓰면서 그중에 가장 잘 된 작품을 뽑아 대회에 출품하게 되는 것은 국전이나 도전이 모두 동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부님으로부터 콜이 왔다.
대개 사부님으로부터의 콜은 반갑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강원도전 기간에는 그리 유쾌한 콜이 아닐 것임을 직감한다.
아, 역시 그랬다.
불길한 느낌은 틀리질 않는구나!
호출에 의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았는가? 눈물이 가득 고여 그렁그렁한 그 눈망울을 말이다. 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이건 사족이다.
잠시만 샛길로 빠졌다 오겠다.
[송아지, 어느 초등 1학년의 시]
송아지의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
그런데, 소고깃국은 맛있다.
난 어떡하지?
캬,
탄복할 만한 시다.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존재 자체에 대한 기가 막히는 모순
그리고 마침내 이어지는
순수하고 솔직 담백한 자기 고백까지.
시점은 또 어떠한가?
송아지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기막힌 언어의 마술사임을 인정한다.
[출간작가 김기린 온라인카지노에서 퍼 옴, '23.3.7]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마침내
이윽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존재로써 이미 무시무시한
모든 학생의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
빠~알간 펜이
내 눈앞에 나타나
화선지 위를 누비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요즘 시중에 유행하는 참교육 시리즈가 내게도 도래하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의 정서에 안 좋다고 문제가 틀렸다고 빗금을 치지 말라는 학부모의 간절한(?) 외침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 것도 같다.
일전에 아들에게 수학문제를 가르쳐 줄 때, 문제를 틀렸다고 빗금을 그으니 빗금을 치지 말고 다르게 표현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나도 들은 바 있으니 말이다. 이게 돌고 도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스승님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글씨 한 글자를 그냥 건너뛰지 않고, 눈앞의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오로지 사냥 본능에 충실한 매의 눈으로 매 글자마다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쏙쏙 잘도 집어내, 일말의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마구마구 난자를 하신다. 유쾌, 통쾌, 상쾌하신가 보다.
윽!
억!
헉!
오직 구슬픈 단말마만이 무심한 갤러리의 공간인 천정을 떠돈다.
혼백은 있거나 말거나.
그렇게
가볍지만 묵직한 잽과
상대를 넉다운시키고도 남을 만한
둔직한 카운터 펀치에 넋을 잃고 쓰러진 채,
한 동안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있게 된다.
이제는 도전이고 뭐고 그저 만신창이가 된 채
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실신 상태를 반듯하게 유지한다.
붓을 들 수나 있나?
글씨를 쓸 수는 있나?
작품을 낼 수가 있을까?
입선이라도 할 수는 있을까나?
이런 쓸데없는 의문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 안에서 빙빙 돈다.
나도 빙빙 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차~려~야 한다.
정신이 있니?
정신이 나갔니?
정신이 언제 돌아오니?
정신이 돌아오면 연락해라.
반가운 환청마저 들린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편 1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