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알쏭달쏭(알도 노래, 달도 노래하네)
이 옥봉 선생이 시를 쓰던 조선시대에는 남자들만의 풍류로써 정자와 같은 멋들어진 공간에서 서로 한데 모여 시를 짓고 즐기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K-시(詩)가 당당하게 중국으로 수출되고, 지식인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사실이 지봉유설에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본토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옥봉의 시라니!
그 순간 글로벌 스타로 화려하게 떠오른 것이지요.
다음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오는 후일담이다.
그녀가 죽은 지 40년쯤 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조원을 아느냐?” 는 원로대신의 질문에 부친이라고 대답하니, 서가에서 바카라 한 권을 보여주었는데 “이옥봉 시집”이라 씌어 있었다.
아버지의 첩으로 생사를 모른 지 벌써 40여 년이 된 옥봉의 시집이 어찌하여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는지 조희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도 기이하고 놀라웠다.
약 40년 전,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시체가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얼굴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서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사람을 시켜 건져 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한 겹 두 겹 벗겨내니, 바깥쪽 종이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으나 안쪽 종이에는 빽빽하게 뭔가가 적혀 있었다. 시(詩)였다.
“해동(海東) 조선국(朝鮮國) 승지(承旨) 조원(趙遠)의 첩(妾) 이옥봉(李玉峯)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시(詩)를 읽어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이라, 조원의 후손들이 그녀의 시를 모아서 바카라을 낸 게 아직도 전해져 내려온다.
다음은 이 옥봉의 재치가 시 속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일화이다.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부탁을 해달라 했다. 사정을 들어본즉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써 보냈다,
洗面盆爲鏡 (세면분위경)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琉頭水作油 (유두수작유)
참빗에 바를 물로 기름 삼아 쓰옵니다.
妾身非織女 (첩신비직녀)
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닐진대,
郞豈是牽牛 (랑기시견우) < 牽 : 끌 견>
어찌 낭군께서 견우가 되리까.
[거울도 기름도 없이 가난하게 살지만
아내가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소를 끄는 사내
즉 견우이겠냐는 재치 넘치는 항소장]
너무도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지만 견우가 아닌 남편이 어찌 소를 훔쳤겠느냐고 멋지게 항변하는 이 시를 본 관리들은 아낙의 남편을 석방해 주었다.
그래서, 산지기는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일로 옥봉은 남편에게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다. 조원하고 함께 산지 20년쯤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여인을 조원은 어찌 그리 매정하게 단칼에 내쳤을까요?
처음 첩으로 들어갔을 때 시를 짓지 않기로 한 언약을 깨뜨려서 내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지만 믿기 어렵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녀가 간간이 시를 지은 흔적(痕跡)이 있는 데다가 시와 철천지 원한을 맺기도 않은 선비가 부인이 시를 썼다고 이혼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적인 판결에 벼슬아치의 부인이 끼어들어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된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서 일까요?
조원의 꽁한 선비 기질로 보건대 타당한 이유일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가의 판결이 슬롯를 크게 어지럽힌 것도 아니고 탄원서를 서로 써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 데, 그걸 이유로 이혼을 하다니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여진다.
훗날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은 "이옥봉의 행적" 이란 글에서 세상사람들은 옥봉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군자다운 포용력이라고 말했지만 고조부는 그녀의 재주가 덕보다 승한 것을 미워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조원과 나란히 장원 급제를 한 율곡 이이가 지적한 "그가 문학적 명성은 있지만 국량과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연이 있는 한시, 까마귀마을에서 퍼옴]
이 옥봉의 한시!
읽으면 읽을수록
그 묘한 매력에 취하는 듯
그래서 알도 달도 노래하는 듯
알쏭달쏭하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시편 99편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