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을 열기 위하여

이현숙. 「꽃심」(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by뜰에바다

이현숙 작가의 「꽃심」은 길지 않은 수필임에도 그 형상화가 돋보인다. 땅에서 튀어나오는 꽃심과 그 줄기와 불그레한 꽃핌을 인생의 성장과 비움에 비유하는 작가의 시선이 은은하여, 큰 울림을 선사한다.


수필에서 먼저, 꽃심은 '단단한 땅을 열어젖히고' 틈새를 이용하여 싹을 틔운다.

누가 저들을 깨웠는가, 누런 흙을 헤치고 요란한 발소리로 솟아나라고. 단단한 땅을 열어젖히는 소리에 지나는 바람마저 비켜 간다. 먼지 같은 싹 하나, 천지에 흔하디 흔한 풀, 없어도 그만이지만 기어이 틈을 비집고 자리 잡는다. 바람에 실려 내려앉든, 새 부리에 물려오든, 다 불시착한 자리다. 씨앗은 눅진한 흙냄새를 맡으며 찬찬히 몸을 말아 쥔다. 깊은 어둠 속에서 물의 기척을 더듬는다. 밤낮없이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 깊이 발을 뻗는다.

다음으로, 물길을 찾고 양분을 먹은 꽃심은 '자신을 깎으며' 줄기를 만든다.

막 틔운 잎이 숨을 들이쉴 수 있도록 뿌리와 줄기는 온 힘을 모은다. 줄기가 자신을 깎으며 내어주는 마음을 잎맥마다 새긴다. 미물의 발자국을 새기고 새들의 울음을 얹는다. 멀리서 물소리가 스며들고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두런거림과 정겨움을 함께 담는다. 잎을 펼치는 힘은 줄기에서 나온다.

그다음은, 꽃망울을 만들고, '불그레한 꽃임을 살며시 열어젖히기'까지는 '하루가 다르게' 꽃심도 사춘기를 겪는다.

부드러운 바람엔 살랑거리며 리듬을 탄다. 거센 바람엔 발끝을 꾹꾹 누르며 버틴다. 세상에 내 자리 하나 만들려면 눈치가 빨라야 하고 휘어질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의 결을 느끼고 세기를 가늠하며 몸을 낮출 때와 다시 일어설 때를 스스로 알아챈다. 살아가려면 버거운 날도 숱하기에 흔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줄기 끝에 받침을 펼치고 나면, 몸은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달리하는 사춘기를 겪는다. 받침 위에 멍울이 차츰 부풀어 오르고 달거리가 시작된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던 봉우리는 불그레한 꽃잎을 살며시 열어젖힌다. 가지마다 꽃이 만개하면 바야흐로 절정이다. 이 순간을 위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밀어 올리고 받침을 펼친 것이다.

마침내 불그레한 꽃을 피워낸 꽃심은 '십 리 밖에서 향기를 좇는 벌 나비'를 맞이하고, 햇빛에 지치기도 하면서 궂은날과 시련을 다 이겨낸 후, 아름답게 단풍 진다.

단풍은 다시 피는 꽃이라 했던가, 은은한 금빛으로 물드는 자신이 오히려 흡족하다. 어떠한 시련도 속으로 삭이며 내일을 준비하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 마지막 정열은 볼수록 경이롭다. 이 세상에 불시착한 뒤, 싹 틔우려 흙을 비집으며 몸살을 앓은 날, 줄기를 밀어 올리며 성장통에 밤잠을 설친 날, 생살이 찢어질 듯한 아픔 속에서도 잎을 내밀며 버틴 날, 허공에 삶의 터를 닦느라 버둥거린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쓰러졌다면 오늘 내가 없다. 돌아보면, 지난한 시간을 견딘 힘은 무엇이라도 피워보려는 꽃심이었다.

화자는, 꽃심처럼 자신을 피워보려고 애썼던 '오래 붙잡은 마음들을 씨앗 털 듯 바람결에 실어 강물에 흘려' 보내고, 비로소 마음이 가벼운 제 숨을 찾는다.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내 안에 숨도 제 리듬을 찾는다. 비운다는 건 잃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가 덜 흔들리는 쪽으로 옮겨가는 일이다. 늘 잘해야 한다는 마음과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워왔다. 꽉 채우려다 보니 내려놓는 법을 몰랐다. 이제는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쪽으로 기울여본다. 비워낸 자리에 느긋함을 들앉힌다. 그곳으로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수필 '꽃심'은 꽃심이 자리를 잡고 싹을 틔워 줄기를 만들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인생의 몸부림과 성장통으로 비교하며 형상화시켰다. 문장이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가끔 화려한 듯하면서도 유려한 완성미를 갖추었고, 섬세하게 물 흐르듯이 담백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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