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가장 먼저 바꾼 것

아직 초록색인 사람에게

by찬란한행운아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졌고, 바람에서도 여름과는 다른 느낌이 난다. 계절은 분명 가을로 넘어왔는데, 집 앞 나무들은 아직 대부분 초록빛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노랗게 변한 잎도 있고, 벌써 붉게 물든 잎도 눈에 띈다.


아직은 여름의 초록과 가을의 색이 함께 있는 풍경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초록빛이었던 잎들도 하나둘 저마다의 색을 드러낼 것이다. 같은 나무에 달려 있어도 어떤 잎은 먼저 노랗게 변하고, 어떤 잎은 붉게 물들고, 어떤 잎은 한참 동안 초록빛을 간직한다.


문득 나무를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해서 나무가 모두 같은 날, 같은 색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런 것 같다. 학생일 때는 학생이라는 정해진 신분 안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교복을 입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학교생활을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니 아주 작은 것부터 달라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다. 엄마가 염색을 해보라고 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학생일 때는 할 수 없었던 머리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새로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조금 달라진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염색 하나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해도 되는구나’ 하고 느꼈던 작은 순간이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거창한 변화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색 하나를 바꾸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처음 내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샀던 날, 부모님에게 묻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골랐던 날,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던 날. 누가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조금 특별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으니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도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이는 일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정해준 모습에서 조금씩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고,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조금씩 나다운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

단풍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잎은 벌써 붉게 물들었고, 어떤 잎은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초록빛인 잎도 많다. 그렇다고 아직 초록인 잎이 계절을 놓친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만의 속도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내 색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내 색을 찾지 못했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남들은 벌써 자기 색을 찾은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무마다 물드는 시기가 다르듯 사람마다 자기 색을 찾아가는 시간도 다르다.


아직 초록빛이라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벌써 붉게 물들었고, 누군가는 이제 막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또 누군가는 아직 초록빛 그대로일 수도 있다. 계절은 같아도 물드는 때와 색은 모두 다르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늦게 물들어도 괜찮다. 아직 나의 색을 보여주지 않았을 뿐, 나에게도 분명 나만의 계절이 올 테니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색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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