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일기
*102p
/나라는 존재는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김영하의 신작을 발견해서 읽었다.
김영하라는 작가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솔직한 자기 고백, 그리고 명료한 문체 덕분에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두 번은 나올 거 같지 않은 적나라한 에세이였다. 한 때 “젊음의 표상”과도 같았던 이 작가도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꼈다. 인생의 가을을 준비하는 나에게 먼저 도착한 선배가 미리 생각할 거리들을 챙겨주는 느낌이라서 좋았다.
마냥 어렸을 때와는 달리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강물은 한줄기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걸 작가는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에 비유한 거 같다.
엄마로서의 나, 슬롯적 지표로서의 나, 개인적인 성취로의 나, 내면의 성숙에서의 나, 파트너로서 나, 일할 때의 나, 부모가 보는 나 등등.
그 모든 ‘나’들의 조화가 중요한 거 같다. 그래서 적당히 균형 있게 나이 드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어쩌면 가장 평범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평범이라는 건 평균점수가 고르게 잘 나온 모범생의 성적표처럼 균형 잡힌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평범”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특별”한 것인지 어렴풋이 알았던 것만 같다. 수십 년 노력해 온 결과 인생의 전반전이 지나서야 겨우 그 끝자락을 붙잡은 주말이었다.
적어도 10년 전의 일기보다는 오늘의 내 글은 평탄해서 다행이다.
우연히 10년 전의 글을 하나 발견했는데, 하루 24시간 중에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단 2분도 없다며 울분에 쌓여 있었다. 오롯이 2시간만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적혀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지금은 72시간 정도 나만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10년 전의 바람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림 그리고 바카라 읽다가 편하게 맛있는 밥 먹고 유튜브 보다가 깔깔 웃으며 낮잠에 빠지고… 하루 중,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반나절 꽉 채웠다. 그것만으로 주말 내내 꽤나 행복했다. 진짜 부자는 시간부자가 진짜배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