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답을 알려주는 시대, 문제 앞에서 버티는 힘
답을 아는 것과 푸는 힘은 다르다.
중학생 때 수학 학원에 다녔다. 35년 전 일이니 지금과는 학원 풍경도 많이 달랐다.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학원에 오기는 했지만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숙제도 해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설명해도 딴짓을 하고, 문제를 풀 시간에도 대충 앉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친구 부모님은 알고 계실까. 아이가 학원에 오기는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걸.’
그때 나는 막연히 알았다. 학원에 다닌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다고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숙제를 했다고 모두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아니다. 공부한다고 모두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기는 어렵다.
공부에는 최소한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문제를 읽고, 손으로 풀고, 틀리면 다시 고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건너뛰면 실력은 잘 쌓이지 않는다.
이제 내가 부모가 되었다. 가끔 중학생 시절 학원에서 느꼈던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 아이는 학원에 오가며 정말 공부를 하고 있을까. 숙제를 했다는 말은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선생님이 내준 문제를 자기 손으로 풀었을까. 아니면 답만 맞혀놓고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요즘은 더 어려운 시대다. AI 기술이 좋아졌다. 수학 문제집의 문제를 사진으로 찍으면 식도 나오고 답도 나온다. 풀이 과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예전처럼 해답지를 몰래 보는 수준이 아니다. 아이가 조금만 마음먹으면 숙제를 못 할 이유가 거의 없다. 문제는 숙제를 해낼 수 있느냐가 아니다. 그 숙제가 정말 아이의 머리와 손을 거쳤느냐다.
어젯밤 아이가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았다. 과외 선생님이 별표 친 문제만 다시 풀어오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았다. 오랜만에 중학교 수학 문제를 함께 풀어보았다. 솔직히 쉽지 않았다. 요즘 수학 문제는 문장도 길다. 단순히 계산만 하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몇 번 읽어야 하고, 무엇을 묻는지 파악해야 한다. 조건을 놓치면 식을 잘못 세운다.
나는 문제를 천천히 읽었다. 핵심을 찾고, 식을 세우고, 이 방법 저 방법으로 풀어보았다. 한 문제를 푸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이 있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찾는 시간, 막혔다가 다시 돌아가는 시간, 식이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도 쉽게 푸는 게 아니라는 것을. 문제를 보자마자 답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몇 줄씩 써보고, 지워보고, 다시 읽어보면 어떻게든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학은 머리가 좋은 사람만 푸는 과목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 조금 더 버틴 사람이 길을 찾는 과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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