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퇴근
사무실 시계가 저녁 6시 10분을 가리킬 때, 나는 평소와 다르게 단호히 짐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평소라면 조금 더 들여다봤을 서류들과 매번 퇴근을 지연시키던 자잘한 업무들을 뒤로한 채, 오늘은 작정하고 일과를 마무리했다.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찜찜함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해야 할 일들을 과감히 접어두고 나온 나 자신을 먼저 긍정하기로 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딛는 걸음이 생경할 정도로 가벼웠다. 일찍 길을 나선 덕분에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도 마주했다. 예전에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나 짧은 근황을 주고받았다. 퇴근 시간을 앞당기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다정한 우연이었다. 평소 늦은 귀가 탓에 들를 엄두를 내지 못했던 휴대폰 매장에 들러 밀린 볼일도 해결했다. 시간이 나에게 준 뜻밖의 여유였다.
집에 도착하니 학원으로 향하던 아들과 현관에서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아닌 마주 보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함이 느껴졌다. 현관 앞에 배달된 사과 박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유튜브 채널을 배경음악 삼아 붉은 사과 한 알을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과즙은 오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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