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제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느 밤에는 손톱만 한 빛으로 걸려 있고
어느 밤에는 구름 뒤로
제 이름마저 지워버리지만
아무도 달을 결핍이라 부르지 않는다
바다는 한 번에 모든 파도를 밀어내지 않고
나무는 제 속도를 의심하지 않으며
계절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잠시 머무는 그늘을 실패라 이르고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오늘을 부끄러워할까
미완(未完)이라는 것은
무너진 잔해가 아니라
아직 지어지는 중이라는 뜻
여전히 쓰이지 않은 문장이 골목처럼 남아 있고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와
아직 마주하지 못한 내가 서성이고 있다
그러니 서툰 오늘의 계조(階調)를 슬퍼하지 말자
별이 가장 검은 밤의 품에서 눈을 뜨듯
우리도 저마다의 시차 속에서
천천히, 눈부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