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죄인가, 삶을 움직이는 힘인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하여

by신아르케

나는 한동안 인간의 욕망을 가능한 한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야 신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 마음, 쉬고 싶은 마음,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성공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은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낮은 욕망처럼 느껴졌다.

기도와 말씀, 사랑과 희생은 고상해 보였다.

반면 좋은 집을 갖고 싶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왠지 하나님 앞에서 숨겨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과연 욕망 자체가 악한 것일까.

인간에게서 모든 욕망을 한순간에 제거해 버린다면 우리는 더 거룩한 존재가 될까.

오히려 삶 자체가 멈추어 버리지 않을까.

배고픔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먹는다.

피곤함이 있기 때문에 잠을 잔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성적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가정을 이루고 다음 세대를 낳는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공부하고 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기도 한다.

좋은 자동차 한 대를 가지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조차 어떤 사람에게는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욕망은 때로 슬롯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시장경제 역시 인간을 완전히 이타적인 존재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이 법과 제도와 경쟁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

물론 인간의 욕망만으로 좋은 슬롯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뢰가 필요하고, 법이 필요하고, 바카라임과 협력이 필요하다.

욕망에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경쟁은 발전이 아니라 착취가 되고, 부에 대한 열망은 탐욕이 되며, 자기이익은 다른 사람을 짓밟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욕망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욕구와 탐욕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싶다.

배고픈 것은 죄가 아니다.

잘 먹고 싶은 것도 반드시 죄는 아니다.

돈을 벌고 싶은 것도 그 자체로 악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역시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돈 없이는 내가 아무 가치도 없다고 믿게 만들 때,

좋은 자동차를 갖고 싶은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단이 될 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진실까지 포기하게 될 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를 소유하려 할 때,

욕망은 더 이상 삶의 에너지가 아니다.

주인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은 탐욕을 우상숭배와 연결한다. 골로새서 3장 5절이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부르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상이란 반드시 돌이나 나무로 만든 신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그것을 잃으면 내 삶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붙잡는 것.

내 삶의 가장 깊은 중심에 놓여 나를 움직이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욕망이 내 마음의 왕좌에 앉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욕망 없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인간다운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몸과 일상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시고 좋다고 하셨고,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먹고 마시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될 수 있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렇다면 성화란 욕망을 하나씩 제거하여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욕망의 질서가 바로잡혀 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욕망을 자동차의 엔진처럼 생각해 본다.

엔진은 자동차를 움직인다.

엔진이 없다면 차는 한 걸음도 가지 못한다.

성취하고 싶은 마음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더 나은 삶을 원하는 마음도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엔진이 방향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운전대다.

욕망이 삶의 에너지가 될 수는 있지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방향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 배워가는 지혜가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것이 가능하더라도 무엇에도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고백이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의 정신이다.

나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기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내가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이 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그러나 편안함 때문에 해야 할 바카라임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게 자기 자리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절제일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절제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욕망이 전혀 없다면 절제도 필요 없다.

절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원하면서도 그것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나는 그래서 이제 인간적인 욕망을 지나치게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보며 무조건 죄바카라감부터 느끼고 싶지도 않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다만 한 가지는 계속 묻고 싶다.

이 욕망이 지금 나를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이 욕망을 섬기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좋은 차를 사고 싶은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작아지는가.

돈을 더 벌고 싶은가.

벌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위해 정직과 사랑과 가족을 희생할 것인가.

성공하고 싶은가.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신앙은 인간의 욕망과 끝없이 싸우는 전쟁만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욕구와 열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처럼 느껴진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다른 모든 욕망을 버리라는 명령으로 읽기보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라는 말씀으로 읽고 싶다.

먼저라는 말은 다른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무엇이 첫 번째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첫 번째 자리에 계시면 돈도 제자리를 찾고, 성공도 제자리를 찾고, 인정도 제자리를 찾고, 휴식과 즐거움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아마 성화란 그런 과정인지도 모른다.

욕망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보다 더 큰 사랑을 발견하는 것.

무언가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더 깊은 기쁨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좋은 것을 좋아한다.

인정받으면 기쁘고, 성공하고 싶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때로는 내 욕망이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이제 그것 자체를 미워하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며 묻고 싶다.

너는 내 삶의 에너지인가.

아니면 내 주인인가.

나는 욕망을 없애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욕망에 끌려가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기쁨을 감사히 누리고, 원하는 것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되, 그 어떤 것도 나의 최종적인 주인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먹고 싶으면 감사히 먹고,

피곤하면 쉬고,

사랑하고,

일하고,

꿈꾸고,

도전하고,

때로 좋은 것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서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않고 싶다.

내 욕망은 내 삶을 움직이는 엔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운전대까지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그 자리는 나에게도, 나의 욕망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그 방향을 정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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