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어제로 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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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잭슨

알람이 울렸다.

이준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원룸의 얼룩 하나까지 익숙한 천장이었다. 문제는 그가 잠든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복합기였다. 초록 불빛, 늘어나던 형광등, 거꾸로 넘어가던 날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숙취하고는 다른 통증이었다. 두개골 안쪽 어딘가를 가는 실로 조이는 듯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아픔.

휴대폰을 집었다.

수요일, 오전 6시 40분.

이준은 한동안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밤이었고, 자정을 넘겼으니 정확히는 토요일이었다. 그런데 화면은 수요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흘 전. 그가 김성재의 폴더를 받은 날.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의 아침.

꿈이다. 이준은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누웠다. 십 초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다. 포털 메인의 날짜도 수요일이었다. 어젯밤에 본 기사들이 없었다. 임원 보고도, 사십억도, 계약 해지 통보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구체적인 꿈을 사흘 치나 꾼 것이 된다. 파일이 마흔일곱 개였던 것까지, 박소영 과장의 서류 돌려놓던 손동작까지, 민규가 쓰레기통에 던져서 빗나간 종이컵까지.

샤워기 아래에서 이준은 결론을 유보했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오늘 하루가 그 꿈대로 흘러가는지 보면 된다.

지하철에서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환승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하이힐의 여자. 그건 우연일 수 있다. 라디오 뉴스가 전한 새벽 화재 소식. 그것도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구내식당 점심 메뉴가 돈까스였고, 민규가 식판을 내려놓으며 정확히 그 문장을 말했을 때—

"야, 여기 돈까스는 소스를 왜 이렇게 부어주냐. 튀김이 헤엄치겠다."

—이준은 우연이라는 단어를 폐기했다.

"왜. 왜 그렇게 봐."

"민규야."

"어."

"오늘 저녁에 나 야근할 것 같다."

"뭐? 아직 지시받은 것도 없다며."

"받게 될 거야."

민규는 웃었고, 이준은 웃지 않았다. 오후 내내 그는 자기 자리에서 아주 이상한 시간을 보냈다.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겪은 것이다. 한 번 산 사흘을 다시 사는 중이었고, 그 차이를 설명할 언어가 그에게는 없었다.

가능성은 두 개였다. 내가 미쳤거나, 세상이 접혔거나.

이준은 빈 회의실을 잡고 들어가 수첩을 폈다. 맨 뒷장에, 남이 보면 업무 메모로 보이도록 단어를 골라 적었다.

하나. 오늘 저녁 여섯 시 반, 김 대리, 취합 지시. 파일 마흔일곱 개.

둘. 목요일 아침 일곱 시 오십일 분, 재압축, 구버전.

셋. 목요일 오후 회의. 로지스. 사십억.

넷. 금요일, 종료 통보.

적고 보니 이상했다. 예언이 아니었다. 전부 겪은 일이었다. 겪은 일을 적었을 뿐인데 종이 위에서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 있었다. 이준은 목록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다섯. 이 목록이 틀리면, 병원에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젯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밤—의 일을 순서대로 복기했다. 경위서 대신 출력한 v5. 김성재의 빨간 펜. 최종이라는 글자에 그은 두 줄. 확인자 칸의 서명. 사원증. 복합기. 무엇이 방아쇠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부였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 그 순서를 다시 밟아볼 용기가 지금은 없다는 것이었다.

미쳤다면 오늘 저녁 여섯 시 반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접혔다면 김성재가 온다. 엑셀 얘기를 하면서.

오후 세 시쯤, 두통이 한 차례 크게 지나갔다. 눈앞이 하얗게 바래는 통증이었다. 그는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서서 거울을 봤다. 낯익은 얼굴이 낯설게 지쳐 있었다. 문득,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그 곡조를 흥얼거리려 했다.

아버지의 노래.

나오지 않았다.

첫 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첫 음만이 아니었다. 곡조 전체가, 목말 위에서 정수리를 울리던 그 콧노래가, 통째로 없었다. 노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나는데 노래가 기억나지 않았다. 제목 없는 노래는 잃어버리면 찾을 곳도 없었다.

"……피곤해서 그래."

이준은 소리 내어 말했다. 사흘을 두 번 살면 피곤한 게 당연하지. 기억은 원래 흐려지는 거고. 그는 찬물로 얼굴을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거울 속의 남자가 따라 나오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 이준은 처음 사는 사람이라면 지나쳤을 장면 하나를 눈에 담았다. 김성재가 팩스 수신함에서 공문 한 장을 집어 들고, 제목만 훑고는 스캔도 하지 않은 채 서류함 맨 아래 칸에 넣는 것. 발신처 로고가 언뜻 보였다. 태원로지스.

여섯 시 십오 분, 민규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야, 아까 낮에 네가 야근할 거라며. 아직 아무 일 없는데? 퇴근이나 하자."

"십오 분만."

"뭘 십오 분만이야. 무슨 예언가 놀이도 아니고."

민규는 웃으며 가방을 쌌다. 이준은 그 웃음을 보며 잠깐 이상한 감정에 잠겼다. 저 웃음을 자신은 이미 한 번 잃어본 적이 있었다. 계약 해지 통보를 받던 금요일, 계단참에서 종이컵을 구기던 민규. 너까지 엮여, 라고 말했을 때의 그 얼굴. 이 시간선의 민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오늘 밤 자신의 일이었다.

"먼저 가라. 나 확인할 거 하나 있어."

"별나다, 진짜."

민규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여섯 시 이십구 분.

이준은 모니터 구석의 시계를 보고 있었다. 사무실은 반쯤 비어 있었다. 오태석 부장은 통화 중이었고, 민규는 복사기 앞이었다.

여섯 시 삼십 분.

의자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이준은 눈을 감았다 떴다.

"강이준 씨?"

김성재였다. 한 손에 담배와 라이터를 쥐고, 반쯤은 이미 흡연실로 가 있는 얼굴로.

"이준 씨가 엑셀 좀 한다고 들었는데."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준은 천천히 의자를 돌렸다. 심장이 뛰는데 머리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세상이 접힌 것이 맞다면,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을 그는 전부 알고 있었다. 마흔일곱 개의 파일. 대외비 평가표. v5와 v7. 아침 일곱 시 오십일 분의 압축 파일. 그리고 사십억.

이번에는, 순서를 바꿀 수 있었다.

"네, 대리님."

이준은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는 데 남은 힘을 전부 썼다."뭐부터 하면 될까요."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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