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 끝에 만난 음악과 사람들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전날 꺼내놓은 과거의 기억이 밤을 지나 아침까지 따라왔다. 오래전 일인데도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은 금세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이날은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저녁에는 소중한 분들과 식사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를 마시러 라이브 클래식 카페에 갔다.
여러 번 연주를 들으러 갔던 곳이었다. 주로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무대를 보았는데, 이날은 피아노와 플루트의 듀엣이었다.
마침 함께 간 사모님 세 명이 모두 아마추어지만 플루트를 불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악기가 무대에 있으니 반가웠다. 이 카페에서 플루트 연주를 듣는 것은 처음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자리를 잡으러 안쪽으로 걸어가며 창밖의 야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불빛이 아름다웠지만 추위가 느껴져 깊숙한 안쪽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서는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편안히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좋았다.
우리 중 한 분도 상처로 마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이야기를 듣고 말을 건네면서도, 어떤 말이 그 마음에 닿을지는 쉽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첫 곡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흘러나왔다.
전율이 일었다.
익숙한 곡이었다. 찬송가로 부르기도 하고 여러 연주로 듣기도 했지만, 그날 피아노와 플루트로 만난 선율은 유난히 깊게 와닿았다.
눈을 감았다.
내가 플루트를 불 때는 호흡을 살피고 손가락을 움직이느라 바쁘다. 이날은 잘 불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음 음을 놓칠까 하는 걱정도 필요 없었다. 누군가가 들려주는 음악을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됐다.
선율을 따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의 고백이 떠올랐다. 나를 살리신 은혜를 생각하니, 과거의 기억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잠시 다른 생각이 머물렀다.
함께 온 분들이 이 곡을 어떻게 듣고 계신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가 이제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말을 쉬어도 함께 있는 시간은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의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마음이 한 곡의 연주로 모두 풀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편안했다. 굳이 내 마음을 더 설명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어도 괜찮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루 전체가 힘들었다고 기억하기 쉽다. 그런데 이날에는 맛있는 저녁도 있었고, 차를 마시며 나눈 수다도 있었다. 뜻밖에 플루트 연주를 들었고, 첫 곡은 내가 잘 아는 찬송이었다.
아침에는 저녁에 이런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그날을 떠올릴 때면 무거웠던 기억만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피아노와 플루트로 듣던 첫 곡, 편안한 소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분들의 얼굴도 함께 생각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