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일본에서 발견한 뜻밖의 휴식
일본까지 와서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름휴가 셋째 날, 오미하치만의 일본식 숙소였다. 밖은 무더웠고, 우리는 에어컨을 켜두었다. 따뜻한 일본차를 마시며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낯선 집에서 가족들과 그렇게 쉬는 시간이 참 좋았다.
보고 싶었던 곳들을 찾아 떠났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도 있었다.
이번은 네 번째 일본 여행이었다.
렌터카를 빌려 나고야와 후지산 아래를 지나고, 오래 꿈꾸던 가미코치의 계곡과 숲길을 걸었다. 오미하치만에서는 수로를 따라 걷고, 마지막에는 교토를 돌아보았다.
여름의 일본은 뜨거웠다. 더위를 많이 타는 딸은 힘들어했고, 나는 가족들의 상태를 살피며 다녔다. 그래도 새로운 풍경 앞에서는 자꾸 걷고 싶었다. 모자와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고, 땀을 흘리면서도 나무와 계곡 쪽으로 눈길이 갔다.
교토에서는 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드립커피를 내려주신 분은 교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다 은퇴하신 분이셨다. 커피가 참 맛있었다. 잠시 더위를 식히려고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만남까지 얻었다.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인 아들은 일본어로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교토대학원에 관한 정보를 듣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나는 곁에서 바라보았다.
공부하던 언어로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앞으로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직접 묻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헤이안 신궁에서는 다리에 앉아 쉬었다.
걷는 동안 몸에 쌓인 열기가 남아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풍경 소리를 들었다.
다음 장소로 서둘러 가기보다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다. 얼굴에 닿는 바람과 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는 더위도 잠시 잊었다.
가미코치에서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던 저녁도 기억난다.
하루의 걸음을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산속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바람이 불었고, 주변은 고요했다. 그저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나는 향기와 소리, 바람에 마음이 잘 움직이는 사람이다.
문득 내 필명이 떠올랐다. 나는 ‘바람’이라서 바람을 이렇게 느끼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이름으로 삼아놓고, 낯선 곳에서 그 이름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었다. 다리에 앉아 느꼈던 서늘함이나 저녁 산속의 고요함은 사진을 볼 때 내가 다시 떠올려야 했다.
여행 중에도 가족을 챙기는 내 모습은 여전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보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누렸다. 가족을 돌보는 나와 여행을 즐기는 내가 함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밤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여행 가방을 모두 정리했다. 다음 날에는 가족의 점심을 만들고 집안일을 했다. 여운이 남아서인지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였다.
익숙한 생활로 돌아왔지만, 낯선 길을 궁금해하고 바람과 소리에 기뻐하던 내 모습까지 두고 온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바람이 불면 잠깐 걸음을 늦춰볼 수 있겠다 싶었다.
여행 사진을 보면 다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시원한 숙소에서 마시던 따뜻한 차, 커피를 내려주시던 교수님과 일본어로 이야기하던 아들, 함께 찍은 기념사진.
그리고 사진 밖에는 헤이안 신궁의 풍경 소리와 가미코치의 저녁 바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