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자라는 중입니다
사람은 언제쯤 다 자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마음도 단단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쉬워질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를 돌보며 오랜 시간을 살아내면 삶에 대한 답도 제법 많이 알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쉰을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나는 어떤 말에 유난히 서러웠는지, 왜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많이 상처받았는지, 사랑하면서도 왜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왜 어느 날 문득 마음을 흔드는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상담심리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공부할수록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오래 전의 나를 돌아보고, 그때의 마음에 이름을 붙여 보고, 내가 살아온 관계와 선택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믿음 안에서 살아왔지만 신앙이 모든 질문의 답을 쉽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삶을 견디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 왔다.
이 글에는 대단한 성공담도, 완성된 사람의 이야기도 없다.
어린 날의 서러움과 엄마 이야기, 가족과 관계 속에서 겪었던 마음들, 때로는 잘해 주고도 서운했던 순간과 선의를 지키기 위해 경계를 세워야 했던 시간들이 있다.
오십이 넘어 다시 학생이 되어 시험을 준비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이야기도 있고, 식물을 돌보고 산길을 걷고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발견한 평범한 하루도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의 많은 순간은 그때에는 그저 지나가는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지나온 삶을 잘잘못으로만 평가하기보다 천천히 이해해 보고 싶다. 어린 날의 나도, 서툴렀던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느라 나 자신을 잊었던 나도 만나 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에게도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사람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고 있으며, 믿음 안에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다.
아마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이렇게 자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들을 시작한다.
지나온 나를 이해하고, 오늘의 나를 살아가며, 앞으로의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
나는 아직도 자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