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딸에게서 편지가 왔다

11화. 내가 찍지 않은 사진

by필립

“이 사람은 내가 7년 전에 죽는 걸 봤어.”

재하의 말이 떨어지자 태경이 사진을 빼앗았다.

긁힌 자국 아래로 드러난 남자의 눈을 확인한 태경의 손이 떨렸다.

“형…….”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은 태경과 닮아 있었다. 눈매와 코의 모양은 거의 같았지만 태경보다 인상이 부드러웠고 오른쪽 눈썹 위에 작은 점이 있었다.

오른손에는 갈색 가죽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새끼손가락은 안쪽으로 조금 휘어 있었다.

“누구예요?”

내 질문에 태경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손가락으로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쓸었다.

“이태준.”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형입니다.”

“형이 왜 미래 사진에 있어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태경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7년 전에 죽었습니다.”

재하가 벽에 등을 기댔다.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2019년 9월 14일.”

그날은 재하가 내 앞에서 사라진 날이었다.

내가 연락이 끊긴 재하를 찾아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대형 트럭이 인도로 돌진했던 날.

편지에 적힌 사고 시각은 오후 3시 47분이었다.

“그날 형을 봤어?”

태경이 재하에게 다가갔다.

“어디서?”

“서윤이가 지나갈 예정이던 교차로.”

“형이 거기 왜 있었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었어.”

재하가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사고를 찍으려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트럭이 인도로 돌진하기 직전에 그 사람이 서윤이 탄 택시 앞으로 뛰어들었어.”

“무슨 뜻이야?”

“택시기사가 급하게 방향을 틀 수 있게 손전등을 비췄어. 그 덕분에 서윤이는 교차로로 들어오지 않았고.”

재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대신 그 사람이 트럭에 치였어.”

태경이 재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걸 봤으면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경찰에 전부 진술했어.”

“나한테는 왜 연락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네 형인지 몰랐으니까.”

“지금까지 사진도 봤잖아.”

“얼굴이 지워져 있었어.”

태경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우진이 두 사람 사이를 막았다.

“싸울 때가 아닙니다.”

태경이 우진을 노려봤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니지. 미래 영상에서 서윤 씨를 죽인 얼굴이 당신이었으니까.”

“그 얼굴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도 봤잖습니까.”

“그럼 내 형 얼굴은 진짜라는 증거가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미래의 살인자는 우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 아래에는 다른 남자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사진에서 나타난 사람은 7년 전에 죽은 이태준이었다.

갈색 가죽시계와 휘어진 새끼손가락은 모두 그의 특징이었다.

“태경 씨.”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 카메라, 정말 중고로 산 거예요?”

태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3년 전 중고로 구입한 카메라에서 미래 영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다루는 태경의 손은 오래된 물건을 조심스럽게 보호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그리고 처음 만났던 날부터 그는 한 번도 카메라를 몸에서 멀리한 적이 없었다.

“형이 쓰던 카메라죠?”

태경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유품입니다.”

또 하나의 거짓말이었다.

“왜 중고로 샀다고 했어요?”

“형과 서윤 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태준 씨를 몰라요.”

“형의 카메라에는 서윤 씨 사진이 수백 장이나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이 굳었다.

“내 사진이요?”

“전부 몰래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촬영 현장에서 찍힌 것도 있었어요. 형과 함께 작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사진에 찍힌 서윤 씨는 지금보다 어려 보였습니다.”

“7년 전이라면 나는 스물넷이었어요. 웨딩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전이었고요.”

“그런데 사진 속에는 이미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태경이 카메라를 켰다.

저장된 사진을 넘겼지만 내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사진은 어디 있어요?”

“3년 전 전부 사라졌습니다.”

“갑자기요?”

“미래 영상이 처음 생긴 날.”

카메라 안에서 과거의 내 사진이 사라지고, 대신 2029년의 영상이 나타났다.

누군가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덧씌운 것처럼.

“복사본은 없어요?”

“한 장 남아 있습니다.”

태경이 카메라 가방 안쪽을 뜯었다. 천과 천 사이에서 얇은 필름 한 장이 나왔다.

빛에 비추자 웨딩 스튜디오가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젊은 여자와 그 옆에 선 남자.

여자는 나였다.

남자는 이태준이었다.

사진 아래쪽에는 촬영 날짜가 작게 찍혀 있었다.

2019년 9월 14일 오전 11시 17분.

태준이 죽기 네 시간 전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예요?”

내가 물었다.

“모릅니다.”

“원본 파일은요?”

“형의 카메라에 없었습니다.”

나는 필름을 자세히 살폈다.

오래된 사진이 아니었다. 표면에 먼지도 없었고 변색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최근에 인화한 사진처럼 깨끗했다.

하지만 촬영 날짜만은 7년 전이었다.

“내 작업실로 가요.”

“지금?”

“확인할 게 있어요.”

내 스튜디오에는 필름 스캐너와 대형 모니터가 있었다. 원본에 가까운 해상도로 확대하면 사진 속에 숨겨진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침입 흔적도 없었다.

나는 모든 조명을 켠 뒤 필름을 스캐너에 넣었다.

태경과 우진은 모니터 뒤에 섰고 재하는 출입문 앞을 지켰다.

스캔이 끝나자 사진 속 웨딩 스튜디오가 화면 가득 나타났다.

스물넷의 나는 카메라를 든 채 웃고 있었다.

나는 저 옷을 기억했다.

대학교 졸업사진을 찍던 날 입었던 흰색 셔츠였다.

하지만 그날 웨딩 스튜디오에 간 기억은 없었다.

이태준을 만난 기억도 없었다.

“배경부터 확인해볼게요.”

나는 사진의 밝기와 대비를 조절했다.

촬영 장소는 오래된 웨딩 스튜디오였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신랑 신부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고 뒤편에는 날짜가 표시된 달력이 있었다.

2019년 9월.

이상한 점은 거울이었다.

사진 오른쪽 화장대 위에 작은 원형 거울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반사된 부분을 확대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보여요.”

거울 속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서 있었다.

긴 머리와 마른 체형.

여자였다.

재하가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바라봤다.

“서윤이 아니야?”

사진 속에도 내가 있고 거울 속에도 내가 있었다.

옷차림만 달랐다.

이태준 옆에 서 있는 나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저 원피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이 있는 창고로 향했다.

촬영 때 사용하는 의상 사이에 검은색 원피스 한 벌이 걸려 있었다.

지난해 생일에 재하가 보낸 옷이었다.

발신인 없는 택배로 도착해 누가 보냈는지 몰랐지만 이상하게 버리지 못했다.

“네가 보낸 거였어?”

재하는 원피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네가 갖고 싶다고 했던 옷이야.”

“그런데 이 옷이 왜 7년 전 사진에 있어?”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원피스를 스캐너 옆에 내려놓았다.

사진 속 거울을 더 확대했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얼굴은 카메라에 가려져 있었다. 눈과 이마만 보였다.

그런데 손목에 흉터가 있었다.

나와 세 남자의 손목에 생긴 것과 같은 흔적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도 편지를 받은 거예요.”

태경이 말했다.

나는 모니터 가까이 다가갔다.

거울 속 여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지금 내 바카라상 위에 놓인 것과 같은 기종이었다.

렌즈에 붙인 은색 테이프의 위치까지 똑같았다.

“이건 내 카메라예요.”

“7년 전에도 가지고 있었어?”

재하가 물었다.

“아니. 2년 전에 샀어.”

누군가 현재의 내 카메라를 들고 7년 전으로 갔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이태준을 찍었다.

“그럼 사진을 찍은 사람은 미래의 서윤 씨일 수도 있겠군요.”

우진이 말했다.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니에요.”

“얼굴도 같고 카메라도 같은데 어떻게 확신합니까?”

“사진 찍는 자세가 달라요.”

나는 거울 속 여자의 손을 확대했다.

“나는 오른쪽 눈으로 뷰파인더를 봐요. 그런데 이 사람은 왼쪽 눈을 사용하고 있어요.”

카메라를 잡는 방식도 달랐다.

나는 셔터를 검지 끝으로 가볍게 누르지만 거울 속 여자는 두 번째 마디를 구부려 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기 어려운 습관이었다.

“내 얼굴을 한 다른 사람이에요.”

우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래 영상 속에는 우진의 얼굴을 한 살인자가 있었다.

7년 전 사진 속에는 내 얼굴을 한 사진가가 있었다.

누군가 우리의 얼굴을 빌리고 있었다.

“사진 뒷면도 확인해봐요.”

태경이 말했다.

필름 스캔을 뒤집자 검은 얼룩만 보였다.

나는 적외선 모드로 바꿨다.

얼룩 아래에서 희미한 글자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이 사진을 한서윤에게 보여주지 마.

그 아래에는 이태준의 서명이 있었다.

“형 글씨가 맞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했을까요?”

나는 문장을 확대했다.

서명 옆에 아주 작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703.

내가 사는 집의 호수였다.

그때 스튜디오 안에서 셔터 소리가 울렸다.

찰칵.

네 사람 모두 동시에 돌아봤다.

바카라상 위에 놓인 내 카메라가 혼자 작동하고 있었다.

전원을 끈 상태였다.

렌즈 덮개도 닫혀 있었다.

찰칵.

두 번째 셔터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 옆에 연결된 포토프린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연결했어요?”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우진이 카메라를 들어 배터리를 분리했다.

그런데도 프린터에서는 사진이 계속 밀려 나왔다.

첫 번째 사진에는 지금 이 스튜디오가 찍혀 있었다.

모니터 앞에 앉은 나.

뒤에 선 우진과 태경.

출입문을 지키는 재하.

촬영 위치는 천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두 번째 사진에는 같은 장면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내 바로 뒤에 이태준이 서 있었다.

죽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그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경이 사진을 집으려는 순간 세 번째 사진이 나왔다.

이번에는 나와 이태준만 찍혀 있었다.

사진 속 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7년 전 사진의 거울 속에 있던 여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발밑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또 다른 내가 쓰러져 있었다.

사진 아래에 푸른 글씨가 나타났다.

엄마, 이 사진은 엄마가 찍은 게 아니야.

뒤이어 두 번째 문장이 떠올랐다.

엄마의 몸을 가진 사람이 찍은 거야.

“내 몸을 가진 사람?”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사진 속 이태준이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프린터에서 네 번째 사진이 나왔다.

내가 처음 편지를 받았던 날의 모습이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봄이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집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고 당시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리창에 사진을 찍은 사람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나와 같은 얼굴.

그 여자의 목에는 카메라 모양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봄이가 사진마다 차고 있던 목걸이였다.

“봄이…….”

내가 이름을 부르자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 위로 어린아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사진 뒷면에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

엄마가 편지를 처음 받은 날, 나는 이미 엄마 집에 있었어.

그 순간 스튜디오 출입문이 잠겼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모니터만 푸르게 빛났다.

모니터 화면 속 7년 전 사진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 얼굴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스무 살쯤 된 한봄이었다.

화면 속 봄이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스피커가 연결되지 않은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진을 찍은 사람을 찾으면 안 돼.”

“왜?”

“그 사람을 찾는 순간 엄마 몸을 빼앗기니까.”

봄이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죽은 이태준이었다.

그가 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미 늦었어.”

차가운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모니터 속 봄이가 울면서 소리쳤다.

“엄마, 뒤돌아보지 마!”

하지만 바로 뒤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네가 사진 속으로 들어갈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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